[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8회

등록 2004.09.11 08:21수정 2004.09.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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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위기(危機)

산중의 날씨는 예측하기 힘들다. 저녁까지 맑게 개인 하늘은 어둠이 찾아들자 가느다란 빗줄기를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처럼 젖어드는 세우(細雨)는 추위마저 느끼게 했다.


“괜찮소?”

담천의는 절벽을 내려오는 송하령을 바라보며 나직히 물었다. 험한 지형에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송하령이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은근히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담천의는 뒤를 바싹 뒤쫒아오는 송하령을 배려하며 앞을 헤쳐나가고 있는지 벌써 두시진째다.

계산상으로 두시진 정도면 관도에 다다를 것이라 예측하였으나 아직 최소한 한시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았다. 추적자들의 흔적을 살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되자 말을 해도 좋다고 판단했다. 축시(丑時)를 지나 인시(寅時)에 접어든 짙은 어둠 속에서는 간혹 야생동물의 파란 눈빛이 보이기는 했지만 덤벼들지 않았다.

“공자의 몸이 완전하지도 않은데 제가 우비를 입은 게 잘못된 것은 아닌지….”


표사들은 항상 상체를 가릴 수 있는 비옷을 휴대한다. 이틀간 숨어 있었던 동굴을 출발하면서 비가 내리자 그는 그녀에게 비옷을 걸치게 하였던 것이다. 송하령은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담천의가 말을 하자 제일 먼저 그 말부터 꺼냈다. 그는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영약이라 할지라도 중상이 바로 치료될 수는 없다.

“비는 내 몸을 어찌 못하오.”


그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헌데 동굴 앞에 설치한 진식(陣式)이 무엇이길래 그리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동굴을 출발할 때 무작정 나온 그가 허둥대며 자신이 설치한 진식에 빠져 갈팡질팡했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그녀가 손을 잡고 끌고 나왔던 것이다.

“천금쇄(天禁鎖)라는 병진(兵陣)에 오행(五行)을 가미한 것이예요.”

말은 쉽다. 천금쇄는 호로병 모양의 지형에서 적은 병력으로 입구를 막기 위한 진의 하나다. 그것은 병사가 계속해서 움직여야 효과가 있는 진이다. 동굴 입구에 비록 나무나 바위 등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들은 고정물일 뿐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동굴을 나온 담천의가 자신들이 머물던 동굴을 보았지만 동굴은 없었다. 주위와 같이 그저 비스듬한 절벽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는 왜 자신들이 그동안 발각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미 내려오는 동안 그는 많은 추적자들의 흔적을 파악하고 있었다. 송하령이 펼친 진이 아니었다면 이미 그들은 발각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기이한 일은 추적하는 자들인지, 도움을 주는 자들인지는 모르나 세부류의 이질적인 추적자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같은 패거리가 아니었다. 흔적이나 시간적으로나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결론은 그들을 쫒는 곳이 세 곳이라는 점이다. 산을 향해 추적한 마지막 부류는 저녁 무렵 그곳을 지나친 것 같았다.

“진식에 대해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소.”

그녀는 쿡하며 웃었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 그녀의 이가 시리도록 희다. 진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을 데려와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녀는 병법과 진식에 있어서는 이미 그녀의 사부도 인정했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가르쳐 드리지요.”

그녀는 말을 해놓고는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말을 해놓고 보니 이상한 말이다. 친구 간에는 아무런 뜻없이 할 수 있는 소리지만 남녀 간에는 무척이나 조심스런 말이다. 자칫 평생을 같이하자는 말과도 같이 들릴 수 있다.

담천의도 그녀가 얼굴을 붉히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얼른 화제를 바꿨다.

“나는 무공 외에도 사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여러 종류의 것 들을 배웠소.”

사부면 사부지 사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뭔가?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소.”

무림에서 살아 남으려면 무공만으로는 안 된다. 무공이 강하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한 자라도 극독 한방울이면 죽을 수 있다. 알지 못하는 진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죽을 수도 있다. 자신보다 형편없이 약한 몇 명의 합공에 어이없이 목숨을 날릴 수도 있다.

그는 특히 암습과 추적에 대한 기술을 철저히 배웠다. 그게 왜 필요한지는 그가 맡긴 첫 번째 일이 살수(殺手)와 같이 무공이 고강한 한명을 소리없이 죽이는 일이라는 것은 안 다음이었다. 이번 일에 있어 그는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추적자들의 움직임을 그는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늘게 내리던 비는 어느덧 멈춰가고 있었다. 동녘 끝에는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뿌연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시진 정도가 지나면 서서히 어둠이 몰려갈 것이다.

“…….”

앞서 걷던 담천의의 신형이 멈췄다. 그를 뒤를 바싹 따르던 송하령은 갑작스런 그의 멈춤에 그의 등에 부닥쳤다.

“흡….”

그녀는 그의 경직된 모습에 터져나오는 신음을 목으로 삼켰다.

(무언가 있다….)

담천의의 전신은 마치 공격하기 전의 맹수털처럼 긴장이 곧추서 있었다. 이제 길다운 길이라 할 수 있는 소롯길에 접어든 상태에서 느껴지는 이 기운은 무엇인가? 그는 내심 자신의 계산이 맞았음에 안도하고 있었던 터였다.

서가화가 미끼라고 파악했더라도 그들은 송하령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이틀 전 그 지점부터 샅샅이 뒤졌을 것이다. 또한 정주로 갈만한 길을 모두 막고 반나절 이상 허비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험준한 산을 넘어갔으리라 판단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보아온 흔적은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아직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피해야 되는 걸까?)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분명 맹수의 본능과도 같은 그의 내부에서 위험하다고 알리고 있었다. 그는 오감(五感)을 동원해 느끼려 했다. 무엇인지, 사람이라면 몇 명인지 그는 상대를 파악하려 최대한 노력했다.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했다. 분명 그의 본능은 위험을 알리고 있지만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우가 애매하다.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내가 감지할 수 없는 고수이거나 잠행술에 뛰어난 살수일 가능성이 높다)

또 한가지는 설사 매복하고 있더라도 그 인원이 많지 않다는 것. 그는 시간을 계산했다. 오늘 관도를 통해 정주로 떠나야 했다. 반나절 정도 번 시간을 놓치면 산으로 향한 추적자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내려오거나, 인원을 돌려 관도를 막을 것이었다.

어차피 관도에서는 소수 인원 정도는 습격해 올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곳이라니….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은 지극히 옳다. 자신이 생각했듯이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잠시간의 안도감에 그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바보같은 놈… 너의 자만(自慢)이 위험을 자초했구나)

그는 부닥치기로 결정했다. 그는 송하령의 손을 잡았다.

“…….”

그녀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그래도 잡힌 손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송소저… 만약 내가 불리해진다고 생각되면 내 생각하지 말고 도망치시오. 그것이 나를 돕는 길이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상대를 만난다 하더라도 내 한 몸은 피할 수 있소)

그녀의 귀에 파고드는 그의 전음에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이 백번 옳다. 하지만 위험한 그를 두고 자신만이 떠날 수 있을까? 그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주로 가거나, 어쩌면 우리가 머물렀던 그 동굴로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오.)

그녀는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의 몸은 긴장되어 있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위험을 그는 몸으로 감지하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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