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7 회

등록 2004.08.20 07:51수정 2004.08.2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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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 건국에 지대한 역할을 한 두 가문의 여식들이다.대명 건국에 문무(文武)를 대표하는 가문의 여식들이다.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태조가 손자인 혜제(慧帝-建文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태조의 아들이자 혜제의 숙부인 북평(北坪: 후에 수도로 되면서 북경으로 개칭됨)의 연왕(燕王)이 등극하여 강남의 세도가를 멀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 황실에서조차 무시하지 못할 가문이 서가와 송가였다.

그런데 그 두 가문이 진행하는 일에 이처럼 집요한 추적은 무엇이고, 생포라는 미명하에 납치라는 목적은 또 무엇인가? 감히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인가? 모반죄로 역적이 되지 않는 한 일어나서는 안 될 상황이 지금 일어난 것이다.


자청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들을 쫒는 자들은 분명 범상한 자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막강한 무위를 가진 방파라 하더라도 두 가문을 적으로 돌릴만한 방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자칫하면 관(官)과 무림으로부터 협공을 받을만한 엄청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숨돌릴 틈도 없이 공격해 왔다.

또 하나 분명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무림각파와 무림세가에서 이러한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명 태조 주원장은 명 건국시 원(元)의 잔재세력을 몰아내는데 큰 힘이 되었던 무림각파(武林各派)에 대해 토지와 은전을 내렸고, 그 후에는 무림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관(官)은 무림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해 관과 무림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서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무우짜르듯 명확하게 분리될 수는 없었다. 특히 명 건국시부터 무림과 왕래가 있던 개국공신들은 사적으로 무림방파 중 일부와 공공연하게 관계를 가졌고, 시주나 기부라는 명목하에 무림방파의 뒤를 봐주고 한편 사적으로 무림방파의 도움을 받는 관계에 있었다.

문무겸비를 덕목으로 하는 작금의 시세에 세도가들의 자녀들은 관계있는 무림방파로부터 무술지도나 호위 등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강남서가의 부와 권력은 특히 구파일방이나 무림세가와의 관계에 있어 거의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에는 무림세가나 구파일방에서 일절 도움이 없었다. 구파일방이나 무림세가에서 이번 일에 나섰다면 이러한 상황은 되지 않을 것이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의문은 계속하여 자청의 뇌리 속에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열흘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틀전 야밤에 습격한 자들은 대주(隊主)를 비롯한 칩실여명의 표사들을 도륙했다.거의 전멸이라해도 다름이 아니었다.

만약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막아 준 십여명 정도인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아니었다면 그곳을 도망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저들을 쫒는 자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부탁한데로만 한다면 서소저는 무사할거요.”

그는 송하령을 안심시키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위험한 것은 그들 두사람이었다.그들을 쫒는 자들은 평범한 자들이 아니었다. 가공할 무위와 철저한 조직력.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세력이 아니었다.
(서소저가 한나절만 그들의 이목을 끌어 시간을 준다면......)

자청은 초조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하기 시작했다.

× × ×

“나쁜 자식.....!”
서가화는 관도(官道)가 보이자 저절로 욕이 튀어 나왔다.

목적지는 하남성(河南省) 동쪽에 있는 정주였다. 하남성 최대의 상항(商港)으로 명조에 들어서 주춤하고는 있지만 면화의 집산지로 무역이 발달한 도시.

이미 안휘에서 하남의 경계를 넘었으니 거의 다 온셈이었다.

-- 서소저가 위험에 빠질 수 있겠지만...
서소저는 이 사람들을 보낸 후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관가(官家)를 찾아가시오.

-- 서소저라면 관에서 모시지 못해 안달 일거요. 관가까지 갈 동안 모습은 보여주되 관가에 도착하면 이틀간 움직이지 말고 휴식을 취한 후 정주로 향하시오.“

그녀의 현명한 여자다.
호사가들이 장난삼아 강남삼미라 이름 지은 것이 아니었고, 집안 어른들이 그녀를 믿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그가 말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라는데 동의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기분이 나빴다.그녀는 미끼였다.쫒는 자들에게 던져진 미끼요, 그들의 이목을 흐리게 하는 소모품이었다. 강남서가의 여식이오, 강남삼화 중 하나인 자신이 그렇게 사용된다는 것은 아무리 상황이 그리했다하더라도 그녀의 자존심은 구겨질데로 구겨졌다. 특히 한번의 눈길도 준 적이 없는 사내. 갑자기 위급한 때에 진정한 모습을 보이며 나타낸 사내는 뜻밖에도 흙 속에 숨어 있던 보석과 같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사내의 눈길은 송하령에 가 있었다. 여자의 육감은 무서울 정도다. 그 사내에 마음이 있던 아니던 간에 그의 눈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화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그 따위 사내는 얼마든지 있어)

자존심이 구겨진 그녀는 스스로 위안하고 있지만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추적해 오던 자들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미끼인지 알고 있어....!”

미끼가 미끼인 줄 아는 순간 그 미끼는 아무런 효용을 갖지 못한다.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부상자인 다섯명의 표사와 함께 얼기설기 바람을 막아 놓은 마차를 타고 있는 그녀를 미끼라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송하령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어쩌면 송하령이 표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미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송하령을 찾고 있을 것이다. 미끼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면 그 움직임을 토대로 송하령을 추적할 것이다.미끼라 할지라도 한번쯤 입질이라도 할 줄 알았던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나타난다면 한바탕 화풀이라도 하리라 생각하던 서가화는 맥이 풀렸다.

“망할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망할 자식이었다. 러한 분노는 아마 애꿎은 지방관리들에게나 해댈 것이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서편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2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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