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6 회

등록 2004.08.18 08:05수정 2004.08.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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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요?”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이었다.


이 사내는 자신에 대해 지금까지의 다른 사내들처럼 자신을 어려워한다던가 의식적인 접근 같은 것은 없었다.

어디서나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이라도 하며 친해지고자 노력했던 게 지금까지의 그녀 주위의 사내들이었다. 특히 명문세도가의 자식이라면 더욱 심했다. 자신을 어려워하면서도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헌데 이 사내는 둘이 같이 있기 시작한지 벌써 한 시진이 지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묵묵히 앞서 걸을 뿐이었다.

“겉옷을 벗어 주시겠소?”

주위에 인적이라고는 없는 첩첩산중 계곡의 개울가다. 자칫 잘못 들으면 오해사기 딱 알맞은 말이다. 그는 이리저리 몇 가지 야생초를 한손 가득 채취해 진흙과 섞고 있었다.


“……?”

그녀는 왜냐고 묻고 싶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자신의 자화포를 벗어 그에게 건넸다. 장포와 같이 겉에 걸친 자화포를 벗은 그녀의 몸매는 선연했다. 산 속의 저녁이라 그런지 서늘한 기운이 몸을 파고드는 듯 했다.


그는 몇 가지 야생초와 진흙을 섞은 것을 그녀의 겉옷에 비벼댔다. 그녀의 겉옷은 금방 풀물과 진흙으로 엉망이 되고 있었다.

'어쩌자는 것인가?'

그러나 그녀의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그는 그것을 개울물에 말끔히 헹구고 있었다. 물기를 짜고 몇 번을 툭툭 털자 이상하게도 옷은 어느 정도 말라가고 있었다.

“이슬을 맞은 셈 치고 걸치시오.”

“……?”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길에 아마 의혹스러운 기색을 보았나 보다.

“추적에 능한 자들은 간혹 특이한 약물(藥物)이나 향(香)을 사용하기도 하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나 동물만이 맡을 수 있는 것으로 말이오.”

만일을 위해서 그런 것을 없앴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도 이미 걸레처럼 찢어진 전포도 벗어 둘둘 말았다.

“…………!”

자청의 모습을 본 그녀의 눈에 안타까움과 놀람이 겹쳤다. 겉옷인 전포를 벗었다 하나 그 속도 걸레처럼 변한 건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별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상처는 무척이나 심했다. 속옷 전체가 피에 절어 있었다.

파닥--푸--파---파

그는 개울물에 대충 핏기를 닦고 있었다.

“피냄새 역시 추적술에 능한 자들이라면 놓치지 않소.”

“많이 다쳤군요.”

“아직 견딜만 하오”

그는 개울가에 모래를 파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겉옷과 모든 흔적을 쓸어 묻은 다음에 본래 데로 신중하게 덮었다.

“모래는 흙하고는 달리 빨리 흔적을 없애주오.”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녀도 무공을 익혔다. 남에게 핍박받지 않을 정도라 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는 사람이 모두 저 사내처럼 추적이나 도피하는 것, 흔적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명문거파의 인물들이나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세도가의 자제들은 그랬다. 저러한 것은 무공과는 달리 풍부한 경험이나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경우에나 가능했다.

그녀는 그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가 궁금했다.

“갑시다. 계곡을 타고 오르다보면 몸을 숨길만한 곳이 있을 것이오.”

그의 등에 아직도 선명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그녀도 몰랐다. 단지 그는 지금까지 단 일각도 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뒤따라오고 있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떼었다.

“아까 가화소저에 대해 걱정한 것이라면 마음을 놓아도 좋소.”

물은 사람이 물은 내용을 잊어버릴 쯤 되어서야 대답하는 것은 뭐람. 그녀는 피식 웃었다. 단지 그녀의 말을 그가 무시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고마움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대명 최고장군가의 여식이오. 더구나 그녀의 무공은 자신 한몸을 지키는데 절대 부족함이 없소.”

자청은 두 여자의 신분을 아는 순간 뒤통수를 둔기로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일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임을 알았다.

서가화(徐佳花)

태조 주원장이 대명을 건국하는데 있어 도움을 준 개국공신 중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서달(徐達)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字)는 천덕(天德), 고향은 주원장과 동향인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 호주(濠州) 출생.

22세에 원말 백련교 또는 홍건적이라 부르던 민란의 한 우두머리였던 곽자흥(郭子興)의 수하로 있던 주원장의 부하가 되어 명 건국 후까지 태조 주원장을 보필한 무장.

손덕애(孫德崖)에게 붙잡힌 주원장을 구출한 뒤로 주원장의 신뢰를 받아 주력군을 이끌고 전승한 명장으로 대명 건국 전부터 신국공(信國公)에 봉해졌다가 대명이 건립되자 무관(武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그다.

더구나 홍무3년에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지고 오천석의 녹(祿)을 받은 대장군. 명 태조의 대명 건국 후 전제황권을 강화하면서 수많은 개국공신을 숙청하는 가운데서도 서 대장군가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그런 서달 대장군의 손녀이자 대장군가의 현 가주인 서인(徐仁)의 딸이 바로 서가화다. 서달 대장군 사후 이십여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대명의 최고 무관가문은 안휘 서가(徐家)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서달 대장군의 아들들을 비롯, 그 친족(親族)은 대명 문무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가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더구나 서가화는 미녀들이 많기로 유명한 강남에서 강남삼미(江南三美) 중 하나로 꼽히는 재녀(才女)였다.

신분이 예사롭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던 자청이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서가화도 서가화지만 지금 동행하고 있는 여자도 그랬다.

대명 초 최고의 학자요 문장가를 꼽는다면 단연 잠계(潛溪) 송렴(宋濂)이다. 원말 관직을 수여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용문산(龍門山)에 은거하다 대명 건국 전에 태조 주원장의 부름을 받고 왕세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한림학사(翰林學士) 승지(承旨) 지제고(知制誥)의 관직까지 오른 대학자.

유기(劉基)와 함께 주자학(朱子學)의 대가이며 명 태조 홍무제를 도와 명의 정치제도와 통치에 결정적 역활을 하였던 유학의 대가이면서 수많은 저서를 남긴 산문가이기도 하다.

태조의 고문(顧問)으로 신임이 두터웠으나 말년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 바 있는 청렴한 관인(官人)의 대명사라고도 칭송되었던 사람이다.

그러한 송렴의 손녀가 송하령(宋霞嶺)이다. 비록 송렴의 장손(長孫)인 송신(宋愼)이 대죄를 지어 송렴이 귀향살이 중 죽고, 송렴의 제자이며 대학자인 방효유(方孝孺)가 연왕(燕王)이 황위를 찬탈한 후 즉위의 조(詔)를 작성토록한 것에 대해 붓을 던지며 거부하다가 극형에 처해지면서 송렴의 문하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많은 친지들이 죽었으나 강남 송가는 문관이며 대학자의 가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적손(嫡孫)이 가문을 이끌지 못하고, 현재는 관에 진출한 친족이 없는 몰락한 가문이라 해도 대학자 송렴의 손(孫)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강남 송가는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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