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엔 이상은 통화할 수 없습니다"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지 않는 사회 체제 구축을 바라며

등록 2004.06.10 05:22수정 2004.06.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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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에 도착한 지 며칠 후 일이다. 휴대전화를 신청하려고 남편과 함께 후쿠오카 텐진에 위치한 제법 큰 전자상가에 갔다. 그 곳에는 여러 회사의 휴대전화가 있었는데 나는 그 중 국제전화요금이 가장 저렴하다고 생각한 회사의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켜고 모처럼 한국에 국제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웬 일본어가 나왔다. 내용은 "이 전화는 아직 국제전화 신청이 안 된 상태므로 신청해야 사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였다. 몇 번이나 돌려봐도 똑같은 내용이었다.

소심한 나를 대신하여 남편이 그 회사에 직접 전화를 했는데 이게 웬말… 그 전화는 국제전화가 신청 안 됐으며 통화하려면 지금부터 적어도 1주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살 때 담당자에게 국제전화용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는데 일주일 후나 가능하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 회사 담당자는 미안하다면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판매자에게 경고를 하겠다고 하였다. 남편은 어쨌든 되도록 빨리 국제전화를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에 다음날 오후 3시경까지 국제통화를 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오후 3시경이 되자 그 회사에서 국제전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마침 제출하지 못한 서류가 있어 휴대전화를 신청한 전자상가에 갔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한달에 2만엔 이상은 통화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달 통화량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 황당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외국인이라서 차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담당자는 직업의 유무나 사회 지위에 관계없다며 고수익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일본인이라도 휴대전화를 계약한 초기에는 2만엔까지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그 이상 통화하려면 먼저 4-5개월 정도 성실히 요금을 납부해야 하며 4-5개월이 지난 후 다시 금액을 상향 신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만큼 내고, 그것을 오히려 권장하는 한국사회의 풍토에 익숙한 나로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우선 '내가 내 돈 내고 통화를 하겠다는데 왜 제한을 하는가'하는 생각에 마치 나의 통화권이 침해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조금 황당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이래 저래 생각을 해보니 이런 제도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는데 혹시 한국에서도 이러한 제도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요즈음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지 않으려는 사회 제어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도 사람 사는 곳이고 한국도 사람 사는 곳인데,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가 안정적인 데는 문제 발생을 미리 예측하고 사전에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한 회사들이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워 대책없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데 기여(?)해놓고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대책을 세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이렇게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갖추는 것이 여러 모로 낫다.

이제 우리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이 아니라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미리 튼튼하게 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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