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문화관광부 장관입니까?

[주장] 이창동 장관 교체설은 문화를 보는 근시안적 시각의 답습

등록 2004.06.01 05:06수정 2004.06.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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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문광부 장관.
이창동 문광부 장관.오마이뉴스 남소연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열심히 행동하는 사람도 아닙니다만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교체설을 접하면서 가슴이 답답한 김에 야근 중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개혁'이라는 말을 기치로 들고 일어선 노무현 대통령 정권의 결정이 구습 정치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라는 데 대해 당혹해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정권은 재임 기간 동안 문화관광부 장관에 5명이 역임했습니다. 장관 중 일부를 개각하는 것으로 그친다는 '집권 2기'에서, 교체 대상에 왜 하필이면 가장 오래, 한 장관이 재임해야 하는 문화관광부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다른 어떤 부처보다도 한 사람이 오래 역임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문화는 다른 것과는 달리 쉽게 계량되고 쉽게 가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어떤 문화 생산물이 익숙해지고 폭넓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어떤 산업분야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20년간 단 한 푼도 못 벌던 사람이 예술가로 대접받기도 하고, 고등학생이 소설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곳도 문화 산업 분야입니다. 확률이나 통계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에 가깝지요.

그렇게 문화는 쉽게 계량화되지 않으며,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 기반이 사회 전체에 있고,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찰력에는 늘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식견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거는 기대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문화예술인입니다. 그는 소설가인 동시에 영화 감독입니다. 아, 장관은 겸직이 금지이니까 현재형을 쓰면 안 되겠군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소설가였고 영화 감독이었습니다.


1983년 소설가로 데뷔한 이래 20년 동안 그는 한국 문화에 있어 하나의 분야도 아니라 두 개의 분야-문학과 영화-에서 확실한 족적을 새긴 문화예술인입니다.

그의 영화와 소설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가득하며 그의 시선이 선량한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에서 확인할 수가 있겠지요. 그의 문화에 대한 시각을 믿고 그에게 그 자리를 맡긴 것이 맞다면, 이런 식으로 그가 자신의 시각을 펼쳐 보일 수 없게 손발을 잘라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이창동씨를 장관으로 임명할 통찰력이 왜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하는 배경에는 문화라는 영역에 대해 현재 우리 사회가 이해하는 관점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를 보는 관점은 다름 아닌 문화를 경제적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런 시각은 지난 몇 년간의 문화 정책의 중복된 투자와 불균형한 발전에서 그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국내 시장에서도 충분히 선전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류' 열풍이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지요. 게임 산업과 인터넷 기반 온라인 문화 콘텐츠 사업 역시 현재 한국 문화 산업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문화 자체가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주 5일제로 늘어난 시간이 소비로 이행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문화 상품이 늘 그러하듯 사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서 있는 건 아닐까요. 정말 우리의 문화는 문화 자체가 발전하는 기반에서 문화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문화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수문학과 순수미술, 음악은 그 플레이어들인 예술가들만이 여전히 고민하고 노력할 뿐 그 기반이 되는 시스템은 발전하는 기색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위에 제가 예를 들었던 문화산업분야는 모두 이미 정부와 민간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던 분야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저 정도의 수준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들어간 노동력과 자본, 그리고 각 계의 노력은 사실 다른 분야에서도 그 정도의 지원만 있다면 가능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문화 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여전히 '고효율'을 내는 '콘텐츠 산업'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진짜 문화의 기반에 대해서는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 뿌리와 기둥은 말라가는데 잎과 열매만 무리해서 키워낸 기형적인 형태가 되어가는 거죠.

이런 성장은 이미 이공학계 쪽에서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 '산업 발전을 위해'라는 기치를 내걸고 과학기술 개발과 응용산업에만 힘쓴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공계 졸업생의 대규모 실업 사태가 이어지고, 정부도 아닌 민간 단체에서 이런 이공계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이공계가 짱'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제목의 만화를 찍어내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 뒤에는 '예체능계가 짱'이라는 만화가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조사를 좀 해보니 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장관의 평균 수명은 531.641일이더군요. 1.46년이 평균 임기입니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경우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2004년 5월 31일이 483일이 되니, 평균이 안 되는군요. 혹시나 싶어 한국의 장관 평균 수명을 조사해 봤습니다. 평균 1.33년이더군요. 485.45일인 셈입니다. 문화관광부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 임기에 남을 수 있는 부서인 셈이더군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총선에 힘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의 출신지이기도 한 대구 지역에서 누군가는 자폭하는 심정으로 출마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정말 자폭해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쟁에 관여하지 않은 자를 곁에 두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구습을 타파하겠다고 일어선 정권이 아닙니까. 그걸 이겨보고자 일어난 개혁 세력이 아니었습니까. 무엇을 위한 개혁이고, 무엇을 위한 노력입니까.

이창동씨라는 한 개인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서의 재목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관점이 어떻든 그건 공인을 관찰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볼 수 있는 시선이니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것이 못 됩니다.

하지만 다른 누가 장관이 되더라도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장관이라는 자리는 며칠만에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뜻을 만들고 그 뜻을 펼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면 그 사람을 왜 그 자리에 앉힌 겁니까. 인기를 위해서입니까?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현재 '창의 한국'이라는 장기적인 문화관광부 정책을 준비 중이라고 언론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장관은 '언제 그만두더라도 할 일은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이 장관이 준비중인 정책이 그렇게 시작도 되기 전에 사라질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화는 단지 1, 2년만을 보고 움직이고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물론 그 정책들은 신중히 검토되고 논의되고 비판받아야 할 것입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 있어왔던 '장기 전략'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원금만을 늘리고, 그로 인해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충분히 많았다는 것만큼은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쉽게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정치인이 문화관광부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과, 문화예술인이 문화관광부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전히 지역주의, 인맥주의가 판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문화 콘텐츠 기획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일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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