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딸들과의 아침 전쟁

오늘은 작은 딸 생일입니다

등록 2004.04.08 10:59수정 2004.04.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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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랑스런 우리의 작은 딸 찬현이의 생일이다. 사실 찬현이가 태어난 후 엄마인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못 깨닫고 속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하든 엄마 아빠가 더 많이 사랑해주면 되는 것을….’ 다른 사람도 나처럼 찬현이를 사랑해주길 바라는 것이 나의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임을….


찬현이는 엄마와 언니와 함께 태어난 지 27개월 만에 일본에 왔고, 오늘이 만 3년이 되는 날이다.

어제는 유치원에서 찬현이와 함께 오는 길에 조그만 케이크와 초를 준비했다. 아빠도 옆에 안 계시고, 한국에서 보내는 생일보다 못한 것 같아 그냥 넘어가기 서운해서 준비한 것이다. 어제부터 찬현이는 기분이 들떠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는 오늘 아침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오차즈케’(밥에 양념을 좀 뿌려넣고 따뜻한 녹차 물을 부어 먹는 일본식 간단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오늘만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서둘러 찬진이의 아침 도시락-아직 입학식은 안 했지만, 찬진이는 혼자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해서 학교에 간다-을 쌌다. 그리고 미역을 준비하고, 냉장고에서 소고기를 꺼내어 미역국을 끓였다.

우리 딸들은 유독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밥보기를 돌 보듯하고, 밥 먹는 시간도 길다. 매일 아침이면 밥 먹는 것만으로 한 바탕 전쟁을 치른다.


우리집 아침식사에 꼭 빠지지 않는 즐겁지 않은 메뉴 가운데 하나는 “빨리 밥 먹어라, 그렇게 하려면 학교에 가지 마, 유치원에 가지마”라는 나의 잔소리이다. 그래도 애들은 여전히 느긋하다.

한국에서야 ‘밥을 좀 안 먹어도 다음에는 잘 먹겠지’하면서 넘어갔던 것도 일본에 와서는 그게 안 된다. 애들이 식사를 거르면 반드시 아프게 될 것 같고, 그러면 혼자서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고, 아울러 내 일도 모두 멈추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마음 속으로 “오늘은 찬현이 생일이니까, 오늘 아침 만은 큰 소리를 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 아침식사도 여느 때보다 30분 일찍 차렸다. 조그만 케이크에 초도 꽂았다.

“오늘은 찬현이 생일이니까 엄마가 화내지 않도록 빨리 밥 먹어라”는 협박(?)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케이크에만 관심을 갖고 여전히 밥을 먹는데 여유를 부린다.

찬진이는 평소 같으면 벌써 화를 냈을 엄마가 오늘은 친절한 것이 이상했는지 슬금슬금 눈치까지 보면서 장난을 쳤다. 차츰차츰 찬진이가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속에서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다. 다른 때 같으면 고함소리가 몇 번은 났을 상황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오늘만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꾹꾹 참았다.

집에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이들 밥은 여전히 남아있고, 우유도 안 마신 상태에서 장난을 친다. 오늘 아침만은 조용히 넘어가야지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참는데도 한계가 온 듯하였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찬현이에게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언니라는 이유로 찬진이에게 조금 크게 한 소리를 했다.

“빨리 우유 먹고, 이 닦고 학교 가야지!”라고. 그래도 평소의 엄마의 잔소리와는 차이가 나는지 찬진이는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우유 컵에 입만 대고 있을 뿐이고, 찬현이는 전혀 들은 척도 안 하였다.

성질 급한 엄마와 느긋하기만 한 딸들이었다. 몇 번이고 꾹꾹 내 감정을 눌렀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포기하고 오늘 아침마저도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찬진아! 이렇게 하려면 학교에 가지마! 찬현이도 유치원에 가지마!”

결국 오늘도 애들 눈에 눈물이 나게 하고야 말았다.

‘아! 차라리 아이들이 급하고 내 성질이 느긋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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