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개강입니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바라는 것들

등록 2004.03.04 00:43수정 2004.03.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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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는 벌써 봄의 기운이 한창입니다. 이를 시샘이라도 하듯이 꽃샘 추위가 밀어 닥쳤지만, 개강을 맞이한 봄의 색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만 해도 썰렁했던 교정 구석구석까지 사람 기운의 따뜻함이 이어지고, 한동안 때 아닌 불경기에 시달려야 했던 구내 상점들도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캠퍼스는 그야말로 봄입니다.

이번 학기는 우연찮게 신입생들만 듣는 수업을 배정 받았습니다. 첫 수업을 하면서 마주 대한 이들의 시선에는 대학 수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조금의 두려움, 그러면서도 한껏 자유로움에 취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또 다시 취업이라는 수험생의 생활을 해야 할 운명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막 끝낸 수험생 시절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가 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들의 인생 최고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학이었고, 이렇게 오늘처럼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 받는 것이었겠죠. 물론, 이왕이면 더 좋은 대학을 열망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는 스스로에 대해서 뿌듯해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신입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 첫 시간이야 강의 계획이나 수업 방식 등을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처음으로 대학 수업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인생의 지표를 설정해 주거나 혹은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라는 조금은 때 이른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신입생'에게 맞는 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준비하는 데 수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렸습니다. 멋진 말이 아니어도 좋은데, 무슨 말을 그들이 '즐겁게' 그리고 '귀담아' 들을까 고민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학과 대학인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대학생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닙니다. 이제 '대학생'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은 이전 세대가 이룬 축적된 지식과 보편적인 가치를 '학습'합니다. 이를 통해 기본적으로 사회화된 인간이 될 수 있으며, 한 사회의 구성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소양을 배웁니다. 물론, 지금 한국 현실에서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은 철저하게 '입시'를 위한 교육이지만, 그 교육의 원칙이나 목적은 분명히 그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대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은 이전 세대가 이룩한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올 후세에게 물려줄 새로운 이론과 가치, 그리고 기술을 만들어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권과 삶의 자유로움은 그 이전 세대가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들에게서 목숨의 위협을 느껴가면서 만든 이론과 행동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 역시 이전 세대가 밤을 지새면서 연구한 결과물 때문입니다. 대학은 바로 이것을 가르치고, 여기에서 좀 더 나은 인간의 가치와 발전된 기술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곳입니다.

이전 세대에 우리가 진 빚을 후세대에게 갚아 가는 것이 바로 지금 대학인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며, 알지 못했던 부분을 증명해 내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시켜 나가야 합니다. 신입생들은 바로 이러한 자리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대학은 또박또박 칠판에 적힌 것을 받아쓰기해서 외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수의 말이 결코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머리 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 더 옳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늘 정확한 논거를 바탕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상식으로부터 복잡한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입생들에게는 '취업'이라는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취업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 대학 1학년 때만이라도, '대학의 이상'을 꿈꾸어 주기 바라는 것이 너무 지나친 기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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