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문화의 미덕을 일깨워 준 책

[김보일 칼럼 7] 팔리 모앗의 <울지 않는 늑대>

등록 2004.02.04 14:00수정 2004.02.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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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울지 않는 늑대

울지 않는 늑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 중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한데, 사람이 귀한 까닭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유학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다석 유영모 선생은 어떤 책에선가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지구의 장구한 역사에 견주어 볼 때 인류의 역사란 아주 미미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므로 인류의 멸망은 본래의 지구 질서로의 복귀일 뿐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철학자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임을 굳게 믿는 사회 속에서 이런 선각자들의 발언은 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있고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늑대이므로 평화를 얻기 위해 자연권을 지배자에게 위양해야 한다고 했다. 홉스의 늑대는 냉정한 킬러의 이미지다. 자신의 생존 이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울지 않는 늑대>의 저자, 팔리 모왓(Farley Mowat)이 말하는 늑대는 홉스를 비롯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늑대의 이미지가 터무니없는 오류에 근거한 믿음임을 역설한다. 모왓은 우리가 믿고 있는 늑대에 대한 신화가 인간 자신의 죄와 비겁의 투영일 뿐이라고 말한다.

팔리 모왓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인류의 파멸상을 보고 전쟁의 충격에 빠져 고통을 겪었던 모양이다. 그는 수차례 북극을 찾아가 머물면서 에스키모와 인디언들의 참상을 보고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평생 갖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적인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각, <울지 않는 늑대>에서 독자들이 만날 수 있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 졸업후 공무원이었던 모왓은 한 달에 120달러라는 넉넉한 급여에 채용되어 "순록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인간을 해치기까지 하는 포악한" 늑대를 조사하라는 캐나다 야생생물보호국의 지시를 받는다. 이후 모왓은 늑대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바로 옆에서 1년을 보내게 된다. <울지 않는 늑대>는 바로 그때의 기록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철저한 경험적 관찰의 산물이다.

모왓의 관찰 결과는 의외였다.


"수백년 묵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늑대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은 명명백백히 거짓말이라는 깨달음이 내 마음 밭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모두 세 번씩이나 이 ‘포악한 킬러’들의 손에 완전히 내맡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하기는커녕 나에게 모욕에 가까운 절제력을 보여주었다." 라고 모왓은 쓰고 있다.

늑대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인디언 친구 ‘우텍’이었다. 늑대를 자기의 친족처럼 생각하고 있는 우텍은 문명의 사람이 아니라 신화의 사람이었다. 순록이 늑대를 먹여주면, 늑대는 순록을 튼튼하게 해주는 상생의 관계에 있으므로, 순록과 늑대가 하나라는 신화를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우텍의 믿음은 정당한 것이었다.


"늑대는 먹이가 되는 생물종의 장기적인 안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며, 가축에게 입히는 손해는 아주 적은 정도이며, 대개의 경우 인간의 거주지나 농업 시설 가까이에는 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모왓의 관찰 결과였다.

모왓이 본 늑대는 단지 피에 굶주렸다는 이유로 순록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 또 늑대는 자기 마음대로 순록을 사냥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도 않았다. 우텍은 모왓에게 건강한 어른 순록이 늑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말해준다. 심지어 태어난 지 3주가 된 아기 순록도 가장 빠른 늑대를 따돌릴 수 있으므로 순록은 보통의 경우 늑대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모왓은 우텍으로부터 전해듣는다.

통념을 깨는 우텍의 발언,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더구나 늑대는 순록 사냥을 할 때 여러 방식으로 테스트한 후 열등한 순록만을 사냥한다는 사실, 배고프지 않을 때에는 사냥하지 않는다는 사실, 절대로 재미로 사냥감을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왓은 알게 된다. 게다가 늑대는 자기의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밤 사냥을 나가고, 사냥한 음식물을 몸 속에 저장한 채 굴에 들어와서는 게워내어 새끼들을 먹이는 자상한 부양자이기도 하였다.

"순록이 늑대를 먹여 살려. 하지만 순록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건 늑대야. 늑대가 없다면 순록도 금방 없어져버릴 건 뻔한 사실이야. 나약함이 퍼져 모두 죽을 테니까."라는 우텍의 믿음은 그 어떤 생태학자의 믿음보다 생태학적 진실에 접근해 있었다. 자연과 공존하고, 서로 주고받는, 상생과 호혜의 문화가 바로 인디언의 문화였다. 모왓이 발견한 것은 늑대의 삶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인디언의 문화 속에 신화적 형태로 구현되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순록을 대량 살상한 것은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순록의 뿔과 머리가 미국의 트로피 헌터(사자 머리 같이 사냥의 기념물들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냥꾼)에게 충분한 미끼가 되리라 판단한 지방당국은 완전히 조직화된 사냥 원정 여행을 계획했다. 그 결과는 순록의 떼죽음이었다. 그런데도 북극 순록을 도살한 것은 늑대들이라고 거짓 주장한 사냥꾼들과 모피상인들에 밀려, 정부는 늑대 한 마리당 10~30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인간은 아무생각 없이 동물 학살을 자행하는 때와 곳마다, 자기들이 죽이는 대상에 대하여 가장 악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종종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해왔다. 학살의 명분이 모자랄수록 흑색선전은 더 심했다"라고 모왓은 말한다.

자신의 죄의식을 늑대에게 뒤집어씌우는, 인간의 적반하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비웃는다.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진실은 결국 모왓의 손을 들어주었다.

<울지 않는 늑대>는 늑대에 대한 생태 보고서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신랄한 풍자의 글로도 읽힌다. 신화의 죽음 위에 세워진 인류의 문명이 얼마나 더 큰 야만으로 치달을 수 있는가를 이 책은 말해준다. 이 책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면 뜻밖의 기쁨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정보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의 칼럼니스트 김보일 님의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도서정보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의 칼럼니스트 김보일 님의 글입니다.

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돌베개,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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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골치? 문제는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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