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없는 아이가 바라는 꿈은?

[책읽기가 즐겁다 5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은 `라스무스' 이야기

등록 2004.01.15 14:01수정 2004.01.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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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의 고아 라스무스(1981)> 겉그림입니다. 이 책은 2001년에 새로운 판으로 나오면서 책이름이 <라스무스와 방랑자>로 바뀝니다.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1981)> 겉그림입니다. 이 책은 2001년에 새로운 판으로 나오면서 책이름이 <라스무스와 방랑자>로 바뀝니다.계몽사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옷과 밥과 집이란 무엇일까요.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는 고아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베스텔하아거 고아원'이라고 하는 곳에서 라스무스는 아홉 살짜리 소년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라스무스나 다른 동무들은 외로움과 고단함과 지루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고아들에게도 휴식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효오크 선생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생 자신이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 까닭도 있었습니다.<23쪽>


그런데 아이들은 이런 고단함보다도 큰 아픔이랄까요, 허전함을 안고 삽니다. 따뜻한 부모 손길과 품속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라 '자기들이 싫어하는 효오크 원장 선생님 손길'이라도 그립고 정겹게 느끼는 아이들이거든요.

아주 드문 일이지만 단 한 번, 선생이 한 소년의 얼굴을, 그것도 아주 마지못해 쓰다듬어 준 일이 있었습니다. 라스무스는 효오크 선생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밤, 선생이 자기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제발 오늘 저녁엔 선생님이 그렇게 해 주었으면….' 라스무스는 잠들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일도 재수 좋은 날이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내 머리는 비록 밤송이 같지만, 내일 온다는 손님이 나를 데려가게 될지도 모르는 거야'<30쪽>

라스무스나 다른 고아원 아이들은 '손님'을 기다립니다. 고아원 살이가 아이들에게 조금도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낳은 부모는 자기들을 버린 사람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자기를 낳은 부모'는 그립지 않은 대상입니다. 오로지 자기들을 '고달픈 고아원에서 벗어나게 해 줄' 돈 많은 손님들을 기다려요.

하지만 고아원을 찾아와서 데려가는 아이들은 거의 다 계집아이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사내아이들은 '누군가 자기를 데려가기'를 포기하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걱정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라스무스는 동무들과 다른 생각에 잠깁니다. '자기 부모'를 찾아나서야겠다는 생각에요. 그래서 가까운 동무에게 함께 고아원을 떠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무는 농담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라스무스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효오크 선생님을 화나게 한)가 여러 번 일어나면서 라스무스는 불안해서 고아원에 더 있고픈 마음이 사라집니다. 깊은 밤, 맨발이자 '고아원 아이인 걸 누구나 알 수 있는 옷차림'으로 멀리멀리 길을 떠납니다.


<2>

라스무스는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나선 길이거든요. 그러나 라스무스에게도 굶어죽지 말란 하늘의 뜻이 있었는지 자기와 마찬가지로 떠돌이로 다니는 '오스칼'을 만납니다. 오스칼은 이곳 저곳 떠돌면서 아코디언을 켜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동전을 받아서 살아가는 재미가 좋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이제 떠돌이 '오스칼'과 떠돌이 소년 '라스무스'가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겪고 부딪치는 일로 넘어가요. 세상에는 떠돌이를 가엾게 여겨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따뜻하게 대접하는 집도 있으나 문앞에서 박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오스칼에게 언제나 따뜻한 대접을 해준 헤드베르히 부인 집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에 말려듭니다. 라스무스는 "세상엔 이런 악당들이 정말 있는 모양이다"고 생각하고, 오스칼은 "세상은 떠돌이들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말합니다.

둘은 헤드베르히 부인 집을 털려고 한 사내 둘 얼굴을 알고 그 집 밥어미가 악당과 짜고서 부인 집을 털려고 했다는 걸 알지만 이런 사실을 경찰서장이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편지를 써서 경찰서장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내기로 한 할머니가 제때 제대로 보내지 않아서 둘은 곤경에 놓여요. 도둑들이 훔친 돈과 패물을 우연하게 알았고, 그 돈과 패물을 오스칼과 라스무스가 빼내어 나중에 돌려주려고 도둑들이 모를 만한 곳에 감추고 여러 사정을 밝힌 이야기를 편지에 적어서 할머니 편으로 경찰서장에게 보냈거든요.

늦어서야 사건 전말을 적은 편지를 받은 경찰서장이 '문제의 훔친 돈과 물건을 오스칼이 빼앗아 숨겨놓은 곳'으로 와서 오스칼과 라스무스는 곤경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경찰서장은 고아인 라스무스에게 "네가 바란다면 멋진 집에서 부자로 사는 부모" 밑에 양자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요.

하지만 라스무스는 좋은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보다는 오스칼과 함께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을 즐기는 일을 더 좋아합니다. 사람 좋고 푸근하게 식구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어느 잘사는 농사꾼 집에서도 양자로 라스무스를 받고 싶어했지만 라스무스가 끝내 그 바람을 거절해요.

그리고는 '평생 떠돌이'로만 지내는 줄 알았던 오스칼네 집으로 가서, 오스칼과 오스칼의 아내 말티아나와 함께 살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오스칼과 말티아나는 라스무스를 자기네 아들로 반갑게 맞아들였고 셋은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게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 줄거리입니다.

<3>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를 읽으며 고아원 같은 수용시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즐거울 일은 무엇일까 하는 것, 또 이들에게 어떤 꿈이 있는지, 세상은 고아원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떠돌이 오스칼을 바라보는 사람들 눈길을 살피며 세상 사람들 마음이라는 게 어떠한지, 또 사람이 서로 믿고 기대는 마음과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기만의 아름다운 삶'을 꾸리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멋과 재미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되었고요.

'돼지털 같은 머리에 주근깨 박힌' 못생긴 소년인 라스무스이고, 한 해에 한 번 목욕할까 말까 하고, 날씨 따뜻한 봄, 여름이면 아내에게 말도 않고 집을 떠나서는 떠돌이로 세상 구경을 하는 오스칼입니다.

이들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재산, 명예, 얼굴이나 몸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서로 따뜻하게 헤아리고 감싸는 마음이 가장 소중합니다. 즐겁게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이 훨씬 소중해요. 믿음과 사랑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소중하고요.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힘과 재미를 주는 책입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 할머니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그늘진 곳도 찬찬히 살피면서 따뜻하게 껴안고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 1981년판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 / 옮긴이 : 신지식 / 펴낸곳 : 계몽사

- 2001년 판 <라스무스와 방랑자> / 옮긴이 : 문성원 / 펴낸곳 : 시공주니어
- 책값 : 6500원

- 2001년에 시공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새판을 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81년에 신지식씨가 옮긴 번역판이 훨씬 매끄럽고 괜찮은 한편, 사잇그림도 옛날판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옛날판으로 읽었습니다.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1981년판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 / 옮긴이 : 신지식 / 펴낸곳 : 계몽사

- 2001년 판 <라스무스와 방랑자> / 옮긴이 : 문성원 / 펴낸곳 : 시공주니어
- 책값 : 6500원

- 2001년에 시공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새판을 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81년에 신지식씨가 옮긴 번역판이 훨씬 매끄럽고 괜찮은 한편, 사잇그림도 옛날판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옛날판으로 읽었습니다.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라스무스와 방랑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문성원 옮김,
시공주니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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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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