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부산의 정치연설 기억하십니까?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님께

등록 2004.01.06 17:07수정 2004.01.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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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께서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딱 한번 10여년 전 의원님을 아주 가까이에서 직접 뵌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전 의원님의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들을 때마다 그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곤 합니다.

최근 원내 제1당의 총무를 맡고부터 홍 의원께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심상찮은 발언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그래 정치라는 것이 그렇지'라며 그냥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5일 "김정일 호감세력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이라는 발언을 접하곤 개인적으로 의원님께 너무나도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김정일의 호감세력 20%가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 20%로 둔갑을 한단 말입니까?

6일자 언론보도를 보니 의원님께서는 "여론조사 기관에 알아보면 구체적인 근거가 나올 수 있다"고 했더군요. 저도 정말 알고 싶습니다. 그 여론조사는 어떻게 김정일 호감세력과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 일치도를 조사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신통방통한 여론조사 방법이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홍 의원님! 아직도 선거를 앞둔 색깔공세가 유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에서 제가 의원님을 직접 뵌 적이 있다고 했죠. 물론 의원님께선 잘 기억을 하고 있지 못하실 겁니다. 1995년 한창 지방선거 열기가 더해 갈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노무현 후보가 예상외로 선전을 하고 있었고 일각에선 조심스럽게 시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도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노 후보 측에서는 마지막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서울에서 유명한, 소위 인기있는 스타 정치인들을 초청해서 지지 연설을 계획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인기 정치인 중에서 홍 의원님도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으로 관심을 가지고 선거 과정을 지켜보던 중 학교 근처 부산 엄궁동 시장에서 노 후보 연설회를 보고 됐습니다.

그 연설회에서 당시 TV에서만 보았던 홍 의원님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윗단추 몇개 푼 채로 흰색의 와이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연설하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연설내용도 아주 논리적이고 당시 부산의 지역 정서를 정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인상적이었었습니다. 인상적인 연설이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홍 의원께서는 이렇게 일갈을 하더군요.


"여론 조사에 의하면 노무현 후보는 한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로 2위에 올라 있는데, 이런 사람을 낙선케 하면 부산 사람들은 전 국민들 한테 지역감정에 눈이 멀어 사람 못 알아본다고 욕들어 먹는다. 지역감정에 굴하지 않고 신념있는 정치를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를 부산시장에 당선시켜 달라."

당시 홍 의원님의 인기를 반영하듯 연설 후 시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뜨거운 격려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같은 동지로서 서로를 치켜세워 주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대통령으로, 또 한명은 원내 1당의 총무로 서 있습니다.


홍 의원님, 지난 10여년 동안 과연 누가 변하였습니까? 홍 의원님께서는 도저히 기존의 선거공학적 관점에서는 이길 수 없었던 노무현 후보가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는 지난 10여년간의 변함없이 지역주의에 저항해온 정치인 노무현의 일관된 행보와 창조적 변화를 위한 민의가 결합된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 홍 의원님께서는 지금 어떠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의원님께서도 오랜동안 정치적 소신으로 지역주의 반대와 부정부패 척결을 견지하고 있는 것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러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한나라당을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지역주의에 여전히 의존하는 구태정치 행태는 몰론이거니와 차떼기 정당의 오명은 제가 알고 있는 홍 의원님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정말로 의원님께서는 한나라당이 민주와 자유를 발판으로 삼아 이 나라의 번영과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려는 중심세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무엇이 홍 의원님을 이렇게 변하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정치인은 상황에 따라 입장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신은 정치적 명분과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되며 또한 충분히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10여년 전의 의원님의 인상적인 연설을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참으로 답답할 뿐입니다.

두서없이 글이 길었습니다. 새해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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