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옛길 초입의 장승. 찻길이 생기고 거의 잊혀진 길인데 시에서 새로 가꾸었다.이성홍
여기가 죽령옛길 진입로다. 아마 혼자 찾고 다녔으면 헤맬 뻔했다. 민박집과 맞춤한 인연이다. 간단하게 러닝용 배낭을 메고 채비를 차린다. 역이 이름처럼 아담하고 이쁘다, 철길도 정겹고.
다시 돌아와 새로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들고 옛길을 오른다. 신라시대때부터 사람들이 오르내렸다는 길이다. 경북 아래지역 선비들이 과거보러 넘었다는 길,(이 길이 아니면 문경새재 쪽을 이용했다 한다) 길은 그냥 밋밋한 산길이다. 가면서 오히려 역 옆으로 산중턱에 걸쳐있는 중앙고속도로의 고가 다리가 더 인상적이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탱하는 다리의 다리가 한참 높다.(뒤에 들으니 높이가 70여m이고 죽령터널을 지나면 103m 짜리가 제일 높단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자꾸 사진찍으려 두리번거리게 된다. 꽃도 찍고 다리도 찍고 나무도 찍고 숲도 찍고 그러다가 찍기를 그만두었다.
그냥 숲길을 느껴보자. 아무렇게나 놓여진 돌, 풀, 꽃, 나무 그리고 사람들 이게 어우러져 난 숲길, 그 자체를 느껴봄직 하지 않은가. 군데군데 화랑이나 선비와 관련한 안내문이 서있는데 어찌 선비나 높은 이들만 다녔으랴.
천년 어쩌면 2천년도 더 전부터 다리품을 팔아 이 재를 넘었을 사람들. 이고지고 행상을 다녔을 장사꾼들, 재넘어 단양장에 소팔러 나들이했을 농꾼들, 그리고 이들을 노리고 나선 좀도둑들. 이들은 숲 속 주막에 쉬면서 무슨 말을 나누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쁜 꽃을 찍고 기암괴석에 탄성을 지르고 높은 이의 행적을 기웃거리는 일, 어찌 보면 이쁘고 잘빠진 여자나 잘 나가는 연예인을 밝히는 속물근성과 다를 바 무어 있겠는가. 속물이 같은 속물을 돌보고 챙기지 않음이 속물의 비애인지도.
비가 와서 숲길은 축축하고 질척거린다. 돌아내려갈 엄두가 안난다. 조금씩 뻐근해지는 허리를 느끼며 죽령재에 오르니 한 건 해낸 기분이다.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 청풍명월이 충청도고 선비의 고장이 영주란다. 그래 오늘은 다 좋다.
안내지에 소개된 죽령주막을 찾는데 입구부터 뽕짝 가락이다. 맛있는 저녁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언제나 맛집은 여행의 첫번째 낙이다) 거의 술집에 가까운 '죽령주막'을 나와서 지나는 차를 얻어타고 희방사역으로 내려왔다. 구불구불 참 길다. 걸어내려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
내 차에 앉으니 편하다. 낮에 풍기에서 들어오면서 봐둔 삼계탕집에 가기로 하고 없는 눈썰미에 조심조심 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풍기 인삼이 유명하니 삼계탕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 부산가면서 가보려고 했던 그 집이다.(그러고 보니 안내지에 삼계탕 자랑은 왜 없는지 이상하네)
잔디 깔린 정원에 식당으로 쓰는 집안으로 들어가니 손님은 나 혼자다. 국물맛이 향긋하고 시원하다. 국물까지 싹 비우는 동안 목소리 큰 주인아줌마는 마실온 이웃과 계속 떠든다. TV까지 크게 틀어놓고.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요즈음 참는 경우가 훨씬 많다)
혼자 손님이라고 주인 아줌마가 직접 타주는 셀프용 커피를 받아들고 (참기를 잘했다) 정원 바위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문다. 털복숭이 강아지가 알짱거리며 다가와 종아리를 핥는다. 배부르게 잘먹고 잘 데도 정해놓았으니 걱정없는 저녁풍경이다.
혼자만의 민박, 이 편안함 이 평정함
민박집 마을로 돌아온다. 수철리, 마을이 참 예쁘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고 예뻐할 것. 정작 그 속의 살림살이야 내 몫이 아닌 바 쓸데없는 마음씀씀이는 이제 그만.
억지로 차 한 대 지나는 마을길을 돌아 민박집에 들어가니 아저씨가 반갑게 맞는다. 조촐한 아랫채에 불까지 넣어 아늑해 보인다. 모기걱정을 하니 혹시 모른다고 모기약을 뿌려주고 저녁을 권하던 아저씨는 안으로 식사하러 들어가고 나는 수돗가에서 빨래거리를 물에 흔들어 빨래대에 널어 놓는다.
강행군한 하루였는데 별로 피곤한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시작한 국선도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 긴장하고 있는건가) 이제 죽령 재아래 산골마을은 깊은 잠에 빠져들고 간간이 마을어귀 철길로 리드미칼한 기차소리가 자장가처럼 정겹다.(기찻길옆 아기가 잘도 자는 이유를 알겠다)
집앞에 높다랗게 서있는 가로등 불빛이 달빛인양 한가로이 마당을 비추고 처마밑 평상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주인집에서 내준 사과를 깎아 먹으며 나는 혼자만의 여행의 묘미를 맛본다. 이 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