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 바란다!

등록 2003.12.12 08:24수정 2003.12.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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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월간 <사상계> 5월호에 김지하 시인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의 부정과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한 <오적(五賊)>이란 시를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재벌과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끈끈한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은 국민을 볼모로 밤낮없이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하고 있다.

제1야당이자 국회의 거대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어떤가. 한나라당은 멀리는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가깝게는 김영삼 정권까지 그 맥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짓밟고, IMF를 야기한 장본인들이 아직도 한나라당에 엄존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에 국민들은 시달리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세풍, 안풍 등 크고 작은 각종 부정 비리 사건의 정점에 늘 한나라당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지난 대선 때 모 대통령 후보가 한나라당을 '부패원조당'이라고 비아냥거렸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거대 다수당이라는 기득권을 앞세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시도 때도 없이 휘두르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작년 대선 때도 한나라당은 각 기업들을 자신들의 사(私) 금고쯤으로 생각하고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차떼기 수법'까지 동원하여 불법으로 거둬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 동안 이런 불법 대선 자금 모금이 선거 때마다 관례화되어 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기업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불법, 탈법을 서슴치 않았다. 결국 이런 사실이 꼬리가 잡혀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범위가 정치권까지 미치자 한나라당은 환골탈태의 의지로 선거법을 고쳐 선거공영제를 도입하고 기업들로부터는 한 푼의 정치 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혁명적인 선언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쇼로 일과성 구호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지난 대선 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를 덮어버리고 희석시키기 위해 한참 수사가 진행 중인 대통렬 측근 비리 문제를 특검을 통해 수사하자고 특검법을 만들고 이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대통령은 현재 검철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킨 특검법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임을 내세워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대통령의 지나친 월권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산적해 있는 민생 문제와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내팽게 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철회를 주장하며 마침내 단식 농성에 들어 갔다. 결국 거대 야당 한나라당과 최대표의 의도대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재의결을 거쳐 법으로 확정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최 대표가 농성 당시 농성장에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고 써 놓은 구호처럼 진정으로 나라를 구하고 싶다면 작금의 사태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백배 사죄 후 정계를 은퇴해야 옳다. 한나라당은 철저히 변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적 우세를 앞세워 아무 잘못도 없다는 식으로 국회를 뛰쳐 나와 장외 투쟁을 일삼고 대표가 앞장서서 단식 농성을 하는 것은 꼴불견, 바로 구태 정치의 재연으로 보여질 뿐이다.

지금 국회는 식물국회에서 비리 의혹 국회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로 변했다. 국민들을 우습게 아는 후안무치한 작태를 국회는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하면 될 일이다. 여야 모두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면 될 일이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권의 추잡한 몰골을 보면서 절망하다 못해 분노하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면서 서로 헐뜯으며 정쟁만 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거대 야당으로서 소아적인 정치를 버리고 통큰 정치, 대범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행태(行態)의 정치를 계속 고집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번 기회에 한나라당은 진실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구하는 지름길이자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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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저는 중앙 주요 일간지 및 지방지에 많은 칼럼을 써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신문들의 오만함과 횡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터넷 신문이란 매체를 통해 보다 폭넓게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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