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사
단언컨데 '만만하고 하찮은 삶'을 사는 인간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어떤 곡절을 가슴에 품고 살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이란 시쳇말로 소설책 10권만큼의 사연과 드라마는 담고 있다.
대부분의 소설가가 한번쯤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되돌아 자신을 지금 이곳에 있게 한 여러가지 구구한 사연들.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과 유년시절의 추억 등등.
1988년 한 기자가 쓴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평론가들 역시 이 기자 출신 작가를 주목했다. 그러나 그도 잠깐, 1990년 절필선언을 한 이 작가는 자그마치 13년을 침묵함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 절필선언에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고싶다"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늦가을. 바로 '그 작가' 양헌석(47)이 '내 이야기'를 쓴 장편소설 <오랑캐꽃>(실천문학사)를 들고 돌아왔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와 그로 인해 불행을 강요받았던 유년, 연좌제의 사슬을 끊고 교사와 기자가 되기까지의 힘겨웠던 여정, 그리고 아버지와의 진정한 화해에 이르게 한 문학에 관한 이야기까지를 담은 이 작품은 언필칭 자전소설이다.
양헌석은 <오랑캐꽃>을 통해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윤기립, 윤지원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세상, 혹은 아버지와의 진정한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윤지원과 소극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한 윤기립은 내 속에 존재하는 분열된 두 개의 자아"라고 말하는 양헌석은 어쩔 수 없는 그늘에 가려진 인간의 인생이 세월의 격랑을 겪으며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담담한 문체와 튼실한 문장 속에 담아냈다.
양헌석의 부친은 실제로 자신이 지향했던 이념 때문에 20년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장기수. 그의 아들로서 살아온 작가의 청년시절이 평탄했을 리 없다.
하지만 양헌석은 말한다. "이건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라고. "이념소설이 아닌 인간의 인생을 그려낸 소설로 읽어달라"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까지 그가 겪었을 정신적 육체적 시련을.
<오랑캐꽃>을 접한 소설가 조정래는 "분단시대를 형상화하는 새로운 기법이 놀랍다"라는 말로 양헌석의 출간을 축하했다.
연어를 통해 인간을 보다
- 고형렬 에세이 <은빛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