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박소영의 독서이야기 18 -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등록 2003.11.07 12:45수정 2003.11.0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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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요즘 기독교계의 화두는 단연 '청부론'과 '청빈론'이다. 청부론이 세를 넓히고 있는 가운데 청빈론이 맞불을 놓고 있는 양상이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는 아마도 청부론에 대한 반대 내지 우려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김동호 목사가 주창한 청부론이 그리스도인의 좌표로 인지되는 작금의 현실을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방관할 수 없다는 당위에 충실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감지된다.


이 책에 의한다면 '부자'는 부끄러운 이름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청부론 주장자는 '깨끗한' 부자가 되기 위해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는 물질에 대한 마음을 전부 거두도록 했다. 물질이 있는 곳에 결코 하나님이 있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따라서 물질을 택할 것인가,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라는 극단적 이분법에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에게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하나님, 하지만 인간적인 욕망들은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이 책은 그 마땅한 선택의 과정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만이 물질을 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을 따르고 믿는 이들에게만 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소유는 어디까지 허락될 수 있을까? 내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저자는 우리 손에 들어온 모든 물질이 본래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고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소유가 되는 부분은 세상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물질적 사용을 허용하는 것으로 소유의 범위는 거기까지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위해,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한계를 정한' 저축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동기'다. '아껴서 모은 돈을 나누라'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제 것을 나누어야 한다. 이 책에 많은 단락 중 나는 '나눔'과 '변혁'에 집중했다.

'나눔은 구제나 자선이 아니며, 그들의 몫이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것임을 깨닫고 제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 것'이므로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식, 내게 들어온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몫이 빼앗겨진 결과임을 인식하는 것, 바로 이러한 태도이다.


곧 그러한 원리는 강한 자가 낮은 곳을 향하는 자선의 형태가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여 낮아짐으로써 그들의 위치에서 평등해지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스럽게 변혁을 외치며 기독교의 '희년 정신의 구현'으로 결론 맺는다.

49년 또는 50년에 한 번 돌아오는 희년(기쁜 해)은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다른 사람에게서 사들인 토지를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왜곡된 사회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제도이다(하지만 역사상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다고 한다). 예수는 희년 정신의 본보기였고 교회는 그 일을 계승할 공동체인 셈이다.

자칫 사회주의 제도를 수긍하는 대목인데 여기에서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하자. 왜냐면 이 책에서는 개혁의 출발점을 인간 본성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된 본성은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 희년 사역에 동참하는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물들의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동물들은 자신의 배가 채워지면 아무리 좋은 먹잇감이라도 일절 손을 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생존을 확보할 수 있는 양만 가지면 충분한 셈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은 없다.

인간만이 필요 이상으로 남은 것을 제 것으로 만든다. 권력을 가지고 타인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 책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한계와 그 너머의 도전을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흔히 쓰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본문에서 말하는 '희년 사역'을 이루어 나갈 때에만 성립되는 명제이지 싶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지음,
IVP,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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