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그랬어> 창간호 표지(주)야간비행
<아웃사이더> 편집주간을 지낸 김규항씨가 펴내는 어린이 교양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주)야간비행)가 지난 10월 1일 창간했다.
<새소년>이니 <소년중앙> 같은 어린이 월간지들이 폐간한 지 20여 년 만이다. 기존의 어린이 잡지가 “종이잡지의 정체성을 잃고 다른 종류의 미디어에나 어울리는 내용을 어설프게 흉내내다가 자멸했다"고 평가하는 <고래가 그랬어>는, 다부지게도 ‘정통 교양’을 표방한다. 인권과 평화, 양성평등, 미디어 비판, 친환경 심지어 수학과 철학까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를 고루 갖추어 놓았다.
물론 제 아무리 ‘전인 양성’에 도움이 되어도 재미가 없으면 아이들 발에 채이기에도 황송할 뿐. 그래서 <고래가 그랬어>는 ‘만화라는 그릇’을 사용한다. 실제로 잡지의 3분의 2이상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총천연색 만화 연재물이고, 20여 개가 넘는 다른 꼭지들은 물론 별책부록까지 만화의 장점을 충분히 살렸다.
전태일의 일생을 그린 <태일이>(글 박태옥, 그림 최호철)는 독자를 훈계하는 멘트 하나 없이도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서정적인 최호철의 그림은 한 컷, 한 컷 버릴 것이 없다.
<비빔툰>의 홍승우씨는 <신세기 소년 파브르>를 그린다. 욕심꾸러기 인간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곤충들을 살리기 위해 버그 은하계 ‘곤충성’에서 급파한 복제소년 파브르의 모험을 담은 이 작품은 도시 아이들에게 곤충에 대한 정보는 물론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도 가르친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왕따를 당하다 한을 품고 죽은 열무 낭자와 밥 많이 먹는다고 쫓겨난 알타리 총각이 ‘유도비아’를 찾아 떠나는 <열무낭자>(글 조은수 그림 유승하)는 여성에 대한 갖가지 편견과 폭력을 조금씩 깨뜨려나간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쓰고 윤정주가 그린 <뚝딱뚝딱 인권 짓기>는 어린 독자들에게 ‘당신이 가진 인권’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이번 창간호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전쟁’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쟁은 왜 무서운 걸까?’, ‘전쟁은 왜 일어날까?’, ‘정말 전쟁이 필요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소제목들은 <고래가 그랬어>의 지향과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만화들 사이에는 재활용 쓰레기로 장난감을 만드는 <퉁퉁이 아저씨의 얼렁뚱땅 공작교실>(구성 현태준), 직접 요리에 도전하면서 화학 조미료와 인스턴트 식품을 멀리하는 식습관을 기르기 위한 <알콩이와 달콩이의 보글보글 부엌>(글 편집부, 그림 홍시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주인공과 수학을 못해서 자살한 귀신의 만남을 그린 <수학의 가치와 그 효용성>(글·그림 강무선) 등 깊이있는 고민과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거대 자본의 횡포(<나쁜 장사꾼들>-“햄버거 속엔 뭐가 들었어?”), 빈익빈 부익부 현상(<고정관념을 깨면 아플까?>-“부자 나라의 국민은 행복할까?”)처럼 ‘심오한’ 주제는 오히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두살 짜리의 절규에 귀기울이는 세상을 위해,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아이들을 위해, 갓 출발한 <고래가 그랬어>의 몫이 큰 것은 당연하다. 사실, 어찌 보면 진작 나왔어야 할 잡지가 아닌가.
고래가 그랬어 184호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지음,
고래가그랬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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