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통합신당 원내대표신향식
훈민정음 반포 557돌을 기리는 10월 9일 한글날 국민참여통합신당의 김근태 원내 대표는 서글픈 하루를 보냈다. 한자로 표기된 국회 본회의장 명패를 통합신당이 자체 제작한 한글 명패로 바꾸려고 했지만 박관용 국회의장 등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국회에서조차 우리말 우리글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김근태 대표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한자 명패 대신 한글 명패를 쓰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일"이라면서 "대한민국의 얼굴인 국회에서 한자 명패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권위주의적 관행"이라고 성토했다. 김 대표는 또 통합신당의 한글명패 교체 요구에 대해 일부에서 한건주의 정치, 이벤트 정치로 폄하하는 데 대해서도 한글의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속좁은 소견이라고 지적했다.
김근태 대표는 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할 때부터 한글 사랑을 몸소 실천해 왔다. 한 때 의도적으로 영어를 섞어 쓰지 않았을 정도로 우리말 우리글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던 15대 국회 시절에도 한자 명패를 한글 명패로 바꾸려고 시도했고 16대 국회에서도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다.
한글날을 앞둔 8일 국회의사당 본청 통합신당 원내대표위원실에서 김 대표와 함께 한글 명패와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 일답.
- 국민참여통합신당 의원들이 한자 명패를 한글 명패로 바꾸려는 이유는?
"작은 것부터 개혁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국회에서 한자 명패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권위주의적 관행이다. 통합신당 의원들의 국회 명패를 한글로 바꿈으로써 거창한 구호보다는 의정 활동 속의 작은 것부터 개혁하면서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한글 명패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가?
"국민의 대표 기관이자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의원 명패를 '한자'에서 '한글'로 바꾸는 것은 의미있는 변화다. 또한 48년 제헌국회가 제정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문서 한글전용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 예전에도 한글 명패를 사용하게 하려다 국회 사무처의 승인을 받지 못한 적이 있는데.
"92년 한글학회 등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이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국회의원 299명 전원의 이름을 모두 한글로 새긴 명패를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을 만나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무처에서는 한글명패 사용이 규정에 없다는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허용하지 않았다. 이 분들은 당시 유일하게 한글명패의 뜻에 동조했던 국민당 원광호 의원에게 명패를 전달했다."
-올 한글날에도 본회의장의 한자 명패를 한글 명패로 바꾸려고 했는데 일단 무산됐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회 사무처에서는 한글 명패를 만드는 데 대해 '관행'을 이유로 들어 찬성하지 않고 있다. 굳이 한글 명패로 바꾸려면 원내 대표의원들끼리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행을 무시하고 한글 명패를 허용했을 때, 일부 의원들이 영문 문패를 요구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 답변을 해왔다. 대한민국 국회이기 때문에 한글로 국민의 대표 이름을 표시하는 게 당연하다."
- 다른 당에서 어떤 태도인가?
"8일 오전 원내 대표 의원회담이 열린 자리에서도 한글 명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른 당의 원내 대표들은 한자 명패를 써온 '관행'을 따르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외국 인사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에 방문하여 한자 명패를 보면 우리나라에 아예 글이 없는 줄로 착각할 수 있다'면서 '다른 당에서 반대를 한다면 통합신당만이라도 한글 명패를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규정에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행정부가 한글-한자를 병용하기 때문에 입법부도 따르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는 '행정부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입법부의 원칙을 정하여 실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15대 국회 때도 한자 명패를 한글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는가?
"한자 명패를 한글 명패로 바꿔 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원내 총무가 '김근태 의원 같은 거물이 그렇게 작은 문제로 튀려고 하느냐'고 했다. 솔직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국회 명패를 우리글인 한글로 쓰고 싶다는데 이것이 왜 '작은 문제로 튀려는 행동'이라고 눈총을 받아야 하는가."
-16대 국회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이번 국회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기 위한 법률안이 통과되기는 힘들다. 지금은 주5일 근무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아직 한글날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우리나라의 휴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과 국민의 여론이 좀더 형성되어야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일도 본격적으로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기 위해 애를 쓰는 분들이 볼 땐 아쉽겠지만 지금 상황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자는 뜻으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이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된 것도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