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나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나요유은하
4월 14일(월)
숙소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이라크 분들이 손짓을 한다. 뭔가 했더니 한국 소식이 나온다는 것이다. 언제 화면인지는 모르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전시위를 하고 있고, 그 중 ‘파병 반대’ 피켓을 보였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코리아, 사우쓰 코리아”를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박수를 보내 주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4월 16일(수)
처음 장애아동시설인 다르 알 하난에 갈 때 만난 쌀람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가 갑자기 팔레스타인 호텔과 쉐라톤 호텔 사이 정원에 가 보잖다. 그곳에서 미군과 이라크 여인들이 어울려 히히덕거리고 있더란다. 부리나케 가 보았는데, 낮이라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후세인 정권은 매매춘을 법으로 금지해 놨고, 이슬람 문화에서도 거부감이 크다. “한국도 그래요. 미군 주둔지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되었죠”라고 말하곤 둘 다 깊은 한숨.
4월 25일(금)
다르 알 하난 아이들을 위해서 뭘 할까 하다가, IPT 사람들이 전해 준, 종이학이랑 풍선으로 이곳을 꾸며보기로 했다. 좀 걸어다닐 수 있는 아이들은 풍선 가지고 잘 논다. 직원인 옴 제이납은 내게 “우린 미국으로부터 온 어떤 것도 필요 없으니, 치워버려요!”라고 했다. 미안했다.
5월 1일(목)
쌀람 친구가 길에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바로 뒤엔 이라크 사람, 그 뒤엔 탱크가 오고 있었단다. 마주 오던 차가 노선을 바꾸려고 빵빵거려서 자신은 피했는데, 뒤의 차는 그 소리를 못 들어서 머뭇거렸다고 한다. 그 순간 탱크에 있던 군인이 총을 쏴서 그 사람은 즉사했고, 군인들은 유유히 탱크에서 내려, 그 차를 도로 옆에 미뤄놓고 갈 길을 갔다는 것이었다. 그 쌀람 친구는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말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호소할 만한 데가 없다.
5월 6일(화)
알 누르 시각장애인 학교는 통째로 약탈당해 남아 있는 게 없어서 유리 공사와 전기 공사를 먼저 시작했다. 2-3주 정도 지나면 기초 공사는 어느 정도 될 것 같은데, 여전히 주변에 위험이 있어서 미군을 찾아가 보기로 했는데, 마틴 아저씨가 한 마디 한다.
“가봐. 좀 힘들 걸? 내가 전에 미군 지휘관을 만나 대학의 치안 유지를 부탁했더니 ‘우린 여기 치안유지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러 왔다’고 하던 걸.”
5월 12일(월)
함께 일하는 아드난이 오늘 알 누르 스쿨에 미군들이 왔다고 한다. “왜요?”라고 물었더니, 기자들을 잔뜩 데리고 들어와서 미군이 학교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란다. “그래요? 수고했네. 그 군인들 계속 청소하라고 하지. 내가 월급 줄 텐데”라고 하고 오랜만에 웃었다.
5월 14일(수)
프리랜서 PD 한 분과 이라크 박물관을 방문했다. 꽤 고상해 보이는 장교 한 사람이 나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의 문화재들을 이라크 사람들이 약탈해 갔는데, 우리가 와서 모스크 등을 다니며 되돌려달라고 부탁했고, 사람들이 조금씩 가져오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네, 그러세요. 참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하고 돌아 나오는데, 쌀람이 살짝 한 마디 한다.
“거짓말이야. 내가 며칠 전에 마리낼라랑 여길 왔는데, 우리들 보고는 총을 겨누고 ‘꼼짝 마’하고는 여기 있는 물건들을 차로 어디론가 실어나르던걸.”
5월 20일(화)
라디오를 통해 ‘바트당 소속 이라크인들은 자기 직장을 떠나라’는 공지가 전달되었다. 이라크 국민의 3분의 2가 바트당 소속이다. 미국은 전후 이라크 통치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는 건지 심히 궁금해지다.
6월 24일(화)
지쳤고, 한국에 갔다 한 달만에 다시 이곳으로 왔다. 이라크 국경은 비자 없이도 통과되어 오히려 서글펐다. 이라크의 사막에 뚫린 고속도로에는 아직 불탄 차들이 남아 있고, 길가에 거뭇한 것이 고양이 시체처럼 보여 흠칫거린다. 반전평화팀을 다시 만나 가장 처음 들은 이야기는 어제 이라크 군이 임금 지불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미 여자 군인에 의해 3명이 사살 당했다는 소리였다.
6월 27일(금)
미군이 주둔해 있는 관청 앞길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어떤 사람 얼굴을 들고 침묵시위 중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시아파 지도자인데, 어느 날 미군이 와서 끌고 갔다는 거다. 미군 탱크에 폭발물을 설치하려고 했다나. 그 사람 집에서 폭탄이 발견되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 사람은 열흘째 소식이 없단다.
7월 1일(화)
쌀람이 길에서 받아온 전단지 한 장을 내민다. “최후공지”라고 써 있었다.
"이라크 안의 모든 무슬림과 비무슬림, 선량한 주민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제발, 제발, 제발 미군 탱크와 차, 미군으로부터 떨어지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든 폭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치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미리 알렸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지하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