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사
최인석(50)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고통에 다름 아니다. 그의 문장 아래서 까발려지는 인간의 위선과 허위,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는 독자들을 거북하고 불편하게 한다.
그럼에도 최인석의 소설이 20년 이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뭘까? 그의 신작 장편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창작과비평사)는 위의 물음에 답하는 작품이다.
구원의 가능성은 물론, 바꾸어볼 여지조차 없는 강팍하고 건조한 세계. 도둑질을 일삼다 낙상해 죽은 아버지와 술주정뱅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아원에 버려진 심우영에게 세상은 '죽지 못해 살아야할 쓰레기장'과 다를 바 없다.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눌러 앉은 미군들의 구두를 닦고, 그들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는 미군 클럽 웨이터.
순정을 바쳤던 첫사랑 영순은 조직폭력배의 정부(情婦)이자 알몸댄서로 전락하고, 내심 기다리던 엄마는 성별을 알아볼 수조차 없는 남루한 걸인이 되어 거리에서 쓰러진다. 뿐이랴, 빈곤한 육체와 동시에 타락한 정신을 꾸짖으며 우영을 노려보는 섬뜩한 푸른 눈을 가진 은행나무. 세상이 강요한 가난과 남루는 우영을 '도대체가 희망 한 점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나, 절망의 벼랑 끝에도 손톱 만한 희망의 꽃은 피는 법.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마다 나타나 우영을 도와주는 '밥어미(식모)'와 '지구 반대편으로 통하는 우물을 파면 너와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란 메시아의 잠언(箴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는 내내 암울했던 가슴은 이 대목에서 극적으로 반전한다. 비록 가능성이 희박할망정 희망이란 여전히 세상을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
구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영화 <향수>를 통해 말한다. "구원에 대한 희망이 있는 한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최인석의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풍겨내는 향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1980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최인석은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를 사랑한 폐인> <인형 만들기> <아름다운 나의 귀신> <구렁이들의 집> 등을 내놓으며 독특한 세계해석 방식과 변별력 있는 구성법 등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도대체 김정일은 어떤 사람인가?
- 손광주의 <김정일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