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한때 키우던 강아지 '뚱이'김승구
최근들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부쩍 늘어난 애완견 문화는 시대의 변화를 반증하는 좋은 예이다. 신도시 중산층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애완견 센터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책길이나 가벼운 운동 코스에 애완견을 대동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처럼 번성하는 애완견 문화 속에서 견식 문화는 동물학대로 취급되는 실정이고, 견식 문화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젊은층에서 확산되는 견식 문화 포기 현상은 기존의 보신탕 업계에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지만, 달리보면 이제 개나 강아지는 단순한 장난감이나 음식의 차원을 넘어 우리 일상의 당당한 동반자로서 지위를 획득해 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개를 대하는 시각이나 태도가 계층적 차원보다는 남녀라는 성별적 차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플란다스의 개>를 분석해 보면 이런 현상을 좀 더 명확히 감지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개와 관련하여 중요성을 띤 인물이 5명 등장한다. 성별로 따지면 여성 4명, 남성 2명이다.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전단지 도장을 받기 위해 아파트 관리 사무실을 찾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 독거 노인으로 '아가'라 불리는 애완견을 잃어버린 충격에 운명을 달리하는 독거 노인, 그리고 직장 생활 11년 만에 명퇴를 당하여 그 돈의 일부로 '순자'라 불리는 강아지를 산 젊은 여인.
세대를 달리하는 이 여성들에게 있어 강아지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세대의 차이를 막론하고 여성에게 있어 강아지는 삶의 동반자로서 인식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에게는 영혼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강아지이다. 그래서 친구 없는 세상의 학교 다니기는 의미가 없다. 주인공의 아내에게는 강아지는 직장 생활 뒤에 남은 유일한 의미로,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혈연의 정을 대신하는 대답 없는 손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아파트 관리 사무소 경리 아가씨에게 실종된 강아지는 무료한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계기이다. 전단지 도장이나 찍어주고 주판알이나 튀기는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종된 강아지 찾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남성에게 개는 어떤 의미일까? 교수 임용이 되지 못해 고민하는 인문대 출신의 백수 주인공에게 개는 '먹고살 걱정 없는 유한 계급의 취미 생활'이다. 그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개에게 전이시켜,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사정없이 내팽개친다. 그리고 아내가 사 들고 온 강아지는 100m나 되는 가게를 되돌아가 딸기 우유를 사다 바쳐야 하는 귀찮은 미물일 뿐이다. 주인공은 아내를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몰인정한 아내로 몰아붙이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