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삼보일배 순례

서울 시민들 "실제로 보니까 정말 눈물 나네요"

등록 2003.05.29 01:53수정 2003.05.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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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삼보일배 행렬이 서강대교를 건너고 있다.
28일 오전 삼보일배 행렬이 서강대교를 건너고 있다.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
"옳다는 신념과 의지가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하겠어요. 이 무더운 날씨에 저렇게 힘들게 삼보일배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네요. 이 사람들이 바라는대로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4명의 성직자가 시작한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三步一拜) 순례가 서울의 심장으로 들어오면서 눈물나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족히 300미터가 넘는 긴 대열은 혼잡한 서울 도로 한 차선을 자연에 대한 경배와 인간의 오만함을 비는 용서의 물결로 가득 채운다. 지켜보던 시민들은 놀라움과 근심으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결같이 '가슴이 찡하다'고 한다.

이산화질소 0.053(환경기준 0.150). 신촌 로터리에 설치된 대기오염표지판 밑으로 '새만금의 생명들'이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의 대기는 맑아 보였으나 그 투명함 사이로 태양이 작렬하고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파도를 이루며 삼보일배를 이어가는 시민들의 얼굴은 금세 후끈거리는 아스팔트길 위에서 붉게 익어갔다.

28일로 62일째인 삼보일배. 더이상 할 말도 없다. 수년을 걸쳐 반대를 주장해왔고 수없이 많은 몸부림으로 공사 중단을 외쳐왔다. 이제는 묵언(默言). '더 이상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 묻지를 말라'는 4명의 '수행자'들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이 땅에 한없이 용서를 빌었다.

이날 '고행의 길'에는 천주교 문규현 신부, 불교 수경스님, 기독교 이희운 목사, 원불교 김경일 교무로 대표되는 4대 종교의 신자들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를 비롯한 당원들, 연세대 교수와 학생,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서울 시민들이 바라본 삼보일배 순례 행렬
"실제로 보니까 정말 눈물 나네요", "개발이 제 고향 다 망쳤어요"



죽음을 각오한 이번 순례길로 인해 언론과 정치권에서 차츰 새만금 사업을 중단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울림을 얻어가고 있다. 이번 순례에 동참한 한 외국인 환경운동가가 "이제는 노무현 정권도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한 것처럼 이제 겨우 개발과 보전의 두 가지 목소리를 균형되게 들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을 뿐이다.

누구의 목소리에 더 진실성이 있는가?
전북도민들, 삼보일배 행렬 앞에서 확성기 시위

▲ 28일 오후 전북 주민들이 삼보일배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길 건너편에서 벌이고 있다.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


28일 오후 2시에 신촌 로터리를 떠나 오후 일정에 오른 삼보일배 순례 행렬은 길 건너편 이화여대입구 지하철역 앞에서 크게 틀어놓은 확성기 소리와 맞닥뜨려야 했다. 전북에서 올라온 200여명 가량의 시위대가 '새만금 사업의 조속한 진행을 촉구하고 삼배일배를 중단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


이들은 삼보일배 행렬이 다가가자 확성기 소리를 더 높이면서 '전북도민 다 죽이는 환경단체, 문규현 신부는 각성하라', '새만금 사업 발목 잡는 삼보일배 즉각 사라져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새만금 사업은 전북도민의 숙원이고 이미 1조 7천억 원이나 들어간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면서 '전라북도의 지역개발과 이를 통한 경제적 이익 창출을 지켜야한다'는 지역소외론을 강조했다.

이들의 시위를 본 문정현 신부는 "기도 중이고 수행 중인 우리들은 저들을 미운 마음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역대 독재정권이 강조했던 개발논리의 신기루와 환상에 사로 잡혀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순례에 동참한 연세대 독문과 김진영 교수는 "서로간 의사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것 같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며 "아무리 자기주장이 있다고 하지만 저런 모습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수행 중인 사람들에게 폭력이고 또 하나의 환경파괴다"며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부안 출신 한 시민의 말처럼 전북도민이 모두 새만금 사업에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개인 사업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투자유치를 통한 지역개발 성과가 필요한 지역 정치권의 이해가 이들의 목소리에 얽혀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서 '상대방까지 감동시키는' 진실성과 헌신성과 절박함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 류종수
새만금 중단의 목소리가 더 울림이 있다면 그 이유는 오직 '누가 더 진실성과 헌신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의 순례가 서울 도심으로 들어올수록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고 있음을 이날 확인 할 수 있었다.

신촌 로터리를 조금 지난 곳에서 만남 손정옥(55, 여)씨가 내뱉은 첫마디는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는 자신의 심정 고백이었다. 손씨는 "30분전부터 삼보일배 행렬이 지나가길 기다렸다"면서 "시화호도 썩은 적이 있고 그곳에 사는 어민들도 반대한다는데 환경과 생명보다는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공사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선영(23, 여)씨도 근심 어린 얼굴로 이들의 행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새만금 사업이) 참 미묘한 문제인데 이분들이 추구하는 것과 행동하시는 모습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아 감동적이다. 그리고 전북 지역주민들도 설득해 가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분들이 삼보일배 반대시위도 하지만 그것이 지역적 이익을 위한 행동이라면 삼보일배는 모두를 위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더 진실성이 있다. 이런 운동이 더 많은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자신이 경영하는 점포 앞을 지나가는 순례 행렬을 보고있던 한 아주머니는 "절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닌데 너무 고생스러워 보인다"면서도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더 많이 동참해서 어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저렇게까지 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으면 저분들 심정이 어떨까"

신촌 인근에서 오래 사셨다는 한 할머니는 이 행렬이 전북 부안에서 시작해 62일 동안 이어져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TV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가슴이 찡하네요. 예전에 하도 데모를 해대기에 데모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을 정도였어요. 근데 이것도 데모라면 데몬데 이런 모습으로 하는 걸 보니 감동스러워요."

이 말은 들은 한 시민은 자신이 부안 출신이라고 밝히고는 순례 행렬을 목격하면서 만감이 교차하게 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부안에서도 장사하는 사람이나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새만금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어장을 가지고 있는 어민이나 농사짓는 일반 주민들은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개발을 통해 돈 벌 수 있는 장사꾼, 덤프트럭을 사서 일하는 내 친구 같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서니까 지금 함부로 못하고 있다.

나야 고향이 계속 깨끗하게 보전되길 바란다. 지금 고향은 개발에 따른 졸부들이 넘쳐 나서 젊은이들은 일도 안하고 매번 유흥업소만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지역 국회의원은 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면서 마냥 반대만 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개발이 우리고향 다 망쳐놨다."


이날 순례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문규현 신부
이날 순례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문규현 신부류종수
길에서 작은 담뱃가게를 운영하는 최정순(53, 여)씨는 "더 덥기 전에 끝난다니까 다행이다"면서 "저렇게까지 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으면 저분들 심정이 어떨까 걱정된다"는 우려섞인 말을 전했다.

이날 순례 행렬이 더위와 메마른 도시의 빌딩을 '고행'을 멈춰선 곳은 중림동 손기정체육공원이었다.

매번 순례에 동참하며 이 '죽음의 길'을 기록하는 문정현 신부는 "앞으로 3일 남았는데 여기까지 온걸 보니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우일 뿐이었다"면서 "여기까지 이들이 올 수 있었던 것은 육체의 힘이 아닌 정신력 때문이었다. 이 정신력은 기어코 생명을 죽여선 안된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다"고 밝히면서 이날 힘겨운 하루를 마감했다.

새만금 살리기 순례는 오는 31일 시청에 당도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문정현 신부 "기껏해야 충청도밖에 못 넘을줄 알았지..."

'10년을 진행해온 국책사업을 이제 와서 무슨 근거로 막느냐'는 김빠지는 질문에 4명의 성직자는 지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생명을 살려야한다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절박한 이 시점에 이들이 묵언에 들어간 것에 대해 문정현 신부는 "수년에 걸쳐 할만큼 했고 이제는 왜 새만금을 중단해야하는지 모두 알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단지 과거에는 독재 개발논리에 밀려, 지금은 '전북지역 소외론과 친환경적 개발', 그리고 '본전생각'과 같은 경제논리에 밀려 제대로 생명존중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문 신부는 또 "삼보일배는 야만의 개발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존중의식을 자각하는 길로 갈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있다"면서 "이 고행을 통해 새만금 중단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개발논리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삼보일배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고 평가했다. 28일 순례 길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의 목소리를 담았다.

- 삼보일배에 4대 종단이 다 동참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다른 성씨끼리 결혼도 하듯이 네 분이 한 천막에서 같이 자고 함께 수행하는 지금의 삼보일배를 어느 종교에서도 나무랄 수 없다. 이것은 종교사에서도 운동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많은 운동을 해오면서 경찰이랑 치고 박고 원수처럼 살아왔는데 이들처럼 자기를 죽이면서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이런 일을 왜 못 했나하는 생각이 든다."

- 개인적으로 동생되는 문규현 신부에게 하고픈 말은?
"나이차가 있지만 76년 동생도 신부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동지로 대해왔다. 삼보일배를 하겠다는 결정을 듣고 나는 불가능한 일이 기껏해야 충청도밖에 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해창 갯벌에 둘이 같이 다비식을 해라. 그러면 내가 불을 지피고 니들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나도 뛰어들어가겠다'고까지 말했다. 내가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부녀자 같다는 생각에 이들의 '죽음'이 안타깝고 처절해서 시작부터 눈물로 살았다."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땀이 많이 나서 현기증이 난다'고 나 못 듣게 지들끼리 귓속말로 속삭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까 나 걱정할까봐 '이제는 적응이 되니까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더라고. 그렇게 둘이서 매연 얘기하는 것도 듣고 도시로 들어오니까 생지옥 같고 해서 너무 걱정이 됐다. 이럴수록 '사람의 힘이 참 무섭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나는 순례 행렬과 마지막 목적지 시청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지 '눈물로 살았다'는 문 신부는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하나도 안 슬프다'며 그 동안 했을 마음 고생을 환한 얼굴로 지워나갔다. / 류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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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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