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의 <새는>문학동네
2001년 <동정 없는 세상>으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현욱(37)이 두 번째 소설집을 냈다.
'나이키' 운동화와 전자오락 '갤러그'로 상징되는 1980년대.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고교생들의 소소한 일상을 맛깔 나는 문체로 버무린 <새는>(문학동네).
전작부터 이번 책까지 박현욱의 소설을 관통하는 힘은 '재미'다. 일단 펴들면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박현욱의 입담은 자연스레 김유정의 능청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그가 <새는>을 통해 복원해낸 80년대 청춘사(靑春史)는 자주 배꼽을 잡게 만들고, 가끔 가슴을 찡하게 한다. 나처럼 30대 중반의 독자라면 "그래, 나도 이랬지"라며 스스로 무릎을 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은호는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게다가 편모 슬하에 집까지 가난하다. 그 별 볼일 없던 은호가 '첫눈에 반한 사랑' 은서 때문에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독서토론회 참석을 위해 카프카 <성>과 카뮈 <이방인>을 읽고, <정석수학>과 <성문기본영어>에 매달리는 모습은 '사랑'이 왜 위대한가를 구구한 설명 없이도 고개 끄덕이게 한다.
은호와 은수의 사랑을 축으로 양념처럼 섞여드는 여러 사건들. 여배우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의 코팅사진을 보물처럼 들고 다니고, 영국밴드 '듀란듀란'의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의 근사한 금발을 부러워하며,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또래의 여학생을 꼬시고, 다락방에 숨어 도둑담배를 피우는 소설 속 인물들은 왜 그렇게 우리가 지나온 고교시절과 닮았는지.
지고지순(?)했던 은호의 첫사랑은 결국 은수의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로 허망하게 끝난다. 하지만, 사랑이 끝났다고 세상도 끝이 날까?
천만에. 책의 제목으로 차용한 송창식의 노래 <새는>의 가사를 보라. '새는 노래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노래'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을 모르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그리워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알지도 못하는 걸 잃었다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느 날 문득 '내게도 청춘이 남아있을까'라는 생각에 심란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치료제가 돼줄 것이다.
새는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 2013
마녀가 더 섹시하다
김순덕 지음,
굿인포메이션, 2003
도시락 - 가난한 우리동네 이야기
전기철 지음, 유도공 그림,
현재, 200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