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김철리한상언
- 연극 공연으로서는 특이하게 '고교생 이상 관람가', '임산부와 노약자의 관람을 금한다'라고 하는데 얼마나 잔혹한가?
"잔혹하다, 잔인하다라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우리가 잔인하다, 잔혹하다 그러면 시각적으로 피가 튄다든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든가 조명을 충격적으로 한다든가 이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저는 이렇게 풀겠다는 생각은 없다.
작품 자체에 무대에서 죽는 사람이 10명이 넘는다. 잘린 모가지, 잘린 손 이런 것들이 예고 없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이 물론 가짜지만 굳이 더 복잡하고 희한하게 자극적인 것을 안 해도 그 자체가 충격으로 와 닿을 수 있다.
사실 별안간 머리통이 나오거나 잘린 손이 나오거나 하는, 대본에 있는 데로만 하더라도 임산부들은 쇼크를 먹을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가짜라 해도. 우리가 관객을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피가 무대 전체를 덮는다든가 그런 식은 아니다.
피를 무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은 하고 있다. 잘못하면 관객에게 알맹이는 빼버리고 쇼크만 주는 것이 되어 버린다. 20여일 남았으니까 조금 망설이고 있다. 무대에서 연습 해보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 싶으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잔혹성만 가지고 갈 것이다. 괜히 군더더기처럼 관객에게 충격 효과만 주게 된다면 빼버릴 것이다."
- 이 작품을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 연출 할 것인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할 때 정통적으로 하게 되면 문학성에 너무 치우쳐져 극이 활력 없게 되고 연극성만을 쫓아가게 된다면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맛을 과감하게 삭제함으로써 원작을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하지만 문학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도 살려내고 말을 통한 표현의 재미 이런 것도 살려내고 그러면서 연극적인 맛, 연극성도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대중적인 작가였다. 시대가 바뀌어서 그 대중성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대에도 살려낼 수 있는 대중적 요소가 상당히 많다. 문학성, 연극성, 대중성까지 살려낼 수 있다면 그것이 제 바람이다."
- 최근에는 연출보다 희곡 번역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연극계에서 희곡 번역을 많이 한 연출가로 알려져 있는데 번역 작업이 연출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한동안 제가 번역한 것을 제가 연출 안한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는 제가 번역해서 연출하는 쪽으로 가다가 어느 단계부터는 다른 분들이 번역한 작품을 수정해서 한다든가 이런 쪽으로 많이 했다.
번역을 하게 되면 이런 장점이 있다. 아직 컴퓨터를 못해서 손으로 글을 쓰는데 그러다 보면 토씨 하나, 어미 하나까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단어를 쓰면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용에 대한 고민은 거기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면 대본을 무대화시키는 쪽으로 좀더 집중하게 된다. 뜻을 찾고 의미를 찾고 하는 부분에 1차 점검이 되니까. 그런 부분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더군다나 직접 쓰니까.
연출들에게 대본 한번 써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배우들도 자기 대사 한번 써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실천이 어렵다. 일단 그것을 하게 되니까 작업에 들어가면 대본을 거의 안 본다. 내가 첫 번째 관객이 되어야 한다. 관객들이 대본을 보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본을 거의 안 본다. 서로 문제가 되면 대본을 뒤져서 점검을 한다. 하지만 연습장에서는 대본을 손에서 거의 놓고 있다."
- 그간 연출해온 작품들을 보면 정통극에서부터 실험극, 뮤지컬까지 다양하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갖은 작품을 연출했는데 이 모든 작품을 꿰뚫는 나만의 연출 스타일이나 특징을 꼽는다면?
"스타일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이가 50이니까 너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인생 자체와 연결되는 쪽으로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스타일을 고정시킬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넌버벌 연극까지 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극을 함에 있어 언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언어자체가 옛날처럼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때에 굉장히 중요한 것은 입을 통해 나오는 언어이다. 그 부분이 소홀이 된다는 점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 쪽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제가 만든 연극이 지루했던 점도 있다. 그 대신 배우들의 액팅을 통한 동선이 좀 다양하고 다양성 속에서 이유가 명확하게 있는 그런쪽의 연극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을 했다. 배우들을 고정시키고 입만 가지고 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조명만 가지고 하던가 하는 식의 것과 다르다. 도리어 조명의 변화가 많지 않더라도 배우들의 움직임과 말의 변화 이런 것을 통해서 연극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