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거리에서 만난 아이성혜란
암만 시내를 한 시간도 채 벗어나지 않아서 감쪽같이 눈이 사라졌다. 세 대의 차로 나누어 타고 국경으로 달리는 한국 반전 평화팀(이하 평화팀)은 깜깜한 창 밖을 바라보며 드디어 바그다드로 가는 길에 올랐음을 실감했다.
흔들리는 차에, 몸을 떨리게 하는 추위에 시달리며 평화팀은 국경에 도착했다. 요르단 국왕의 사진이 거대한 후세인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이라크 국경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짐을 검사 받고, 카메라와 캠코더의 일련 번호를 알려주는 등 이라크로 들어가는 마지막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바그다드에서 늘 함께 하게 될 낯선 동행인들을 만났다. 여행 가이드와 관광청 직원 두 명. 이들과 함께 다시 새벽길을 달려 바그다드로 향했다.
적막한 국경지대를 차들만 쌩쌩 달린다. 차 안의 사람들은 하나 둘 잠에 빠져들었다. 주위는 온통 시커멓고,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 뿐이었다.
눈을 떴다. 밤새 사람들을 괴롭혔던 추위는 이미 사라졌고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새하얀 요르단 건물과는 다른 황토색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반전 평화팀의 차가 달리고 있는 곳은 바그다드였다.
2003년 2월 28일 - 바그다드, 폭풍전야
바그다드의 거리, 골목에는 아이들이 많다. 구두통을 메고 가는 아이, 골목 어귀에서 구슬 치기를 하는 아이,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어 가는 아이. 요르단과는 달리, 어디를 가나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얼굴에 버짐이 피고, 손과 발이 새까만 이 아이들은 이방인들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평화팀이 건넨 'NO WAR' 배지를 가슴에 달고 신나서 동생이나 친구를 또 데려 온다. 그 아이들의 웃음에서 전쟁의 위협을 보기란 너무나 어렵다.
평화팀이 눈으로 본 바그다드의 분위기는 이 아이들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상점에서 만난 사람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일상'을 보내고 있다.
관광 비자로 들어 온 이상 최소한의 관광 일정을 지켜야 했던 평화팀은, 바그다드에서의 첫날 이런 느낌을 나눌 수 있었다. '전쟁의 위협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가진 회의에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한 마디다.
새롭게 건물이 올라가고, 신부와 신랑이 환하게 웃으며 결혼식을 치른다. 평화팀이 겉에서 본 바그다드는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전쟁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계속 건물을 짓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추측에 평화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근래 부쩍 결혼식이 많아졌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실상 '전쟁'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개전 시기까지 여유가 있으면 절대 나가는 일이 없다는 기자들까지 바그다드를 빠져나가고 있고, 일본 대사관 측에서는 자국민들을 찾아 출국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라크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말또한 전해졌다. 거리에서는 무장한 군인들과 경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평화팀이 '평범한 일상'으로 보았던 바그다드는 조심스레 전쟁을 인식하고 있었다.
2003년 3월 1일 - 우리는 평화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