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우린 무엇을 얻을 것인가

등록 2003.02.21 12:38수정 2003.02.2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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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경우의 수' 중 단지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이 스러져간다는 것만큼 주변 사람들을 당혹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라크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군인이 아니면서 또 정책의 행위 주체가 아니면서 죽어가야 할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도 그렇고, 단지 그 시간에 학교에 가기 위하여 버스를 탔다가 하필 그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당해야 했던 성수대교 참사와 삼풍백화점의 비극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교훈을 남겼으며 또 무엇을 고치게 하였는가 생각하여야 할 시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동차의 구조물들에 대한 결함을 이야기한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불에 타지 않는 불연 소재나 난연 소재로 가공되지 않은 합성물질은 거의 대부분 연소하면서 그 연소의 속도도 문제거니와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가스를 배출한다.

문제는 그 난연 소재와 불연 소재로 전동차의 내부를 만들 수 있는 국내 기술력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우리 대구의 전동차는 그러한 일반적인 사양을 준수하지 않고 제작 납품되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수출용 전동차와 내수용 전동차의 내부 구조사양이 동일하지 않다고 지적된다. 물론 제작업체의 기업윤리나 사회적 기능 등을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하여 지탄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그곳에 있지 않다. 단 천원자리 제품을 수출하면서도 그 제품에 반영되는 원자재비에 울고 웃는 것이 수출업체의 극단적인 현실이다. 하물며 전동차 같은 경우는 그 제작비에 반영되는 원자재비를 최소화시킴으로서 기업의 이윤을 확대시키고자 하였던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발생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 제품 규격을 입찰 조건에 명시하지 않았던 관행이 빚어낸 참사가 아닐까.

수요자가 요구하는 사양을 충족시켰는가 확인하기 위하여 시연회를 가진다. 벤치 마킹 테스트라고 불리는 이 시연을 통하여 수요자는 그 제품이 어떠한 기후와 조건에서도 이상 없이 그 요구한 기능을 수행하는지 반복하여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재점검하고 입찰 계약을 맺는다.

전동차라고 왜 그런 과정이 없었을까. 문외한이지만 반드시 요구 사양과 실제 납품 사양이 일치하는지 점검하고 또 확인하였을 터이다. 방화의 문제는 일반적인 방재시스템에서 최우선적으로 검토하여야 하는 사안이다. 바퀴만 굴러간다고 다 전동차가 아니듯이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여야 하는 원천적 검토가 소홀하였던 것이 아니라 아예 부재하였던 것은 아닐까.

제조자 피해 보상법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동차의 납품업체에게도 그 법이 해당된다면 원천적인 책임을 묻고 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어디 전동차뿐이랴. 이런 관행이 이 도심을 지나는 수많은 차량에는 해당되지 않을까 점검해야 한다.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차량의 화재 사고는 그런 방화시스템과 무관한 것인지 검토하여야 한다.


홍콩의 전동차는 그 앉는 좌석에 쿠션이 설치되어있지 않다. 딱딱하고 불편하다고 느끼겠지만 다습하고 더운 현지의 상황에 맞춘 전동차의 사양이라고 들었다. 전동차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의 경우에 단 한 번 겪고 지나갈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재난에 대비한 잘못된 입찰 관행의 시스템부터 최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허술한 마감재로 시공한 최저 가격 입찰자가 제품을 납품하는 관행이야말로 사고를 확대시킨 가장 큰 원인이고 시간을 두더라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시스템이다.

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자로 유명한 안철수씨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차량과 관계된 사보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의 어떤 행적보다 더 깊은 인상이 받았던 것은 소유한 차량의 매뉴얼을 존중하며 그 매뉴얼에 적힌 대로 차량을 점검하고 수리하다 보니 차량 보유 기간이 길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요즈음은 거의 모든 제품이 사용설명서 혹은 매뉴얼이 포함되어 판매된다. 그러나 아주 쉽게 버려진다. 거의 대부분 제품의 포장재와 함께 말이다. 전쟁에도 시나리오가 있는 현실이다. 발생할 모든 문제에 대하여 매뉴얼이 그 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방재에 대한 행동 매뉴얼만 제대로 숙지하고 행동하였어도 참사의 상당부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 전동차의 운전자 혹은 사령실의 담당자가 정하여진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못하였다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에 명시된 대로 행동하려면 고도의 훈련과 부단한 연습이 반복되어야만 가능하다. 이는 다수의 안전에 관하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원의 선발과정에서부터 그 자질이 확인되고 또 실무과정과 보수교육을 통하여 재교육되어야만 할 절대 불가결의 조건이다.

만일 이 조건에 대한 점검과 반성 없이 해당 전동차량의 운전자를 처벌한다면 그 운전자 역시 그날 그 전동차량을 운전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그 참사규모가 너무 컸다는 이유로 희생되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 운전자가 혹은 사령실 담당자가 아니었으면 그 사고는 줄어들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하여 답하는 것은 우리 사회 구조 전체와 연관되어진다.

탑승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근무조건 개선을 외치는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에 대하여 그동안 우리의 행적은 정당한 것인가. 시민의 발인 지하철을 볼모로 스스로의 이권만 챙기려 한다는 수구언론의 논조에 당장의 불편 때문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았는가.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오래한 홍세화씨는 지하철이나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보여주는 일반 시민 국민의 연대의식이야말로 오늘의 프랑스를 있게 하지 않았을까 말한다. 지하철보다 훨씬 더 정교한 문명의 이기인 항공기의 운항에 대하여서는 그 조종사의 근무 조건과 운행시간이 철저히 관리되고 통제된다. 일반 항공기 한 대보다 전동차량이 수송하는 승객의 수가 더 많은 현실에서 과연 운전자들의 안전과 재난에 대한 방재 훈련은 항공기 조종사의 반의 반이라도 미치고 있었던가 반성하여야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공범인지 모른다. 사회적 구조가 그 구성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때 그 피해와 책임 또한 그 구성원의 몫으로 되돌려진다. 그것이 가장 후진적인 사회의 전형이다.

정치사의 파행을 그래도 부단히 극복한 것이 우리의 현대사이고 그 주체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었다. 잘못된 정치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한 주체들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후진 사회다. 그 구성원들이 다시 한번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시스템의 개선과 확충이 이루어질 때까지 감시하고 토론하고 또 항의하여야 한다.

얼마 후면 새롭게 출발하는 새 정부는 국민의 참여정부를 표방한다고 한다. 시민, 국민 개개인의 참여와 시민단체들의 참여를 이끌고 또 여기서 수렴된 사회 구조의 확충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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