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수들의 파업 전야

등록 2003.01.29 15:57수정 2003.01.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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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마지막으로 다음 주 수업시간에도 여러분들을 보길 바라지만, 파업이 결정되면 부득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 “그럼, 언제 공식적으로 정확히 파업 여부를 알게 됩니까?”


이상은 오늘 내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고 있는 방법론 수업의 마지막에 있었던 간단한 대화입니다. 현재 제가 유학하고 있는 남일리노이 대학에선 단연 오는 2월 3일로 예정되어 있는 교수파업 여부가 전 구성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80년대 대학시절 동맹휴업 등으로 수업을 거부한 적은 있지만 수업을 거부당한 적이 없는지라 이후 학사 일정에 대한 불안감 보다는 조금 황당함이 더욱 앞서기만 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진행된 교수조합(Faculty Association)과 학교 행정간의 협상은 파업 예정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현재에도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행정측은 정부의 교육 예산 삭감 등으로 인한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교수 조합측의 요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천명을 한 상태였고, 교수측에서는 타 대학 수준에 맞는 현실적인 연봉 연상과 교수 지위 보장 등을 주요 요구 사항으로 맞서 왔습니다.

급기야는 지난 가을 연방정부의 노동쟁의 조정 심사를 거치기도 했으며, 교수들은 투표를 통해 지도부에 현재 계약이 만료되는 2월 3일 이후 파업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교수 파업은 학교와 지역사회 뿐만 아니라 현재 분쟁중인 여러 대학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끼는 불합리한 것 중 하나는, 특히 일부 언론등에서 무차별하게 자행되는 미국과 한국의 제도, 문화 등에 관한 비교입니다.


이러한 단순한 비교가 원칙과 사실적 관계에서도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일부는 사대주의적인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우리 것에 대한 비하로 전락하고야 마는, 해서 우리는 미국식을 추종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로 귀결되는 숱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미국의 그것들을 반드시 받들고 또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교수파업의 과정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 사회에 살아있는 합리적인 제도와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태도는 부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측과 행정간의 협상 기간에도 교수조합에 속한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버튼을 양복 오른쪽 가슴에 달고 수업을 진행을 하고 파업 지지 학생들과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행정 측은 교수들이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학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으며, 학생회에선 원칙적으로 교수 파업을 지지하면서, 올해 초에는 파업시 교수 대체인력 투입을 고려중인 행정측의 조치에 대한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수조합에 속해 있지 않은 수십 명의 교수들은 오늘 공동 명의로 학교 신문에 교수조합 측의 입장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싣기도 했습니다. 기간의 논쟁 중에서 어디에도 교수는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자유의 나라(?) 미국에선 누구나 파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죠.

잠시 한국의 상황을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교수노조가 아직도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교수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파업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소위 한국의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는 보수 교수가 한국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에 기고를 하기도 했죠.

왜 한국적 보수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금쪽같이 여기는 미국식을 외눈으로만 바라보는 것일까요? 결국 미국식에 대한 짝사랑도 자기들의 기득권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닐까요?

역대 가장 개혁적인 정부가 탄생을 했다고 하는 시점에서도 파업과 관련하여 노동자 분신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가 누구나 파업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질 못했다고 비관하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철없는 넋두리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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