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푼이와 덕순이는 해마다 쇠기러기처럼 우리 마을을 찾았다. 하지만 창원공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쇠기러기도 팔푼이와 덕순이도 더이상 우리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경상남도
"이히히히~"
"불 딜러라~ 불 딜러라 딜러~"
"이히히히~ 이히히히~"
"태백산캉 지리산캉에 사는 호랑이 두 마리 잡아주모 내로(나를) 용서해주나?"
내 어린 날의 기억 속에는 늘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두 개 있다. 그 이름들은 내가 요즈음도 딸들과 농담을 주고 받을 때 가끔 써먹는 이름들이기도 하다. 팔푼이와 덕순이, 덕순이와 팔푼이... 팔푼이와 덕순이는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마을 주변을 쇠기러기처럼 맴돌았다. 늘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들을 주절주절 내뱉으며.
팔푼이와 덕순이는 둘 다 정신병자였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정신병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잊을 만하면 우리 마을로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조차도 그저 허허, 하고 헛웃음만 내뱉을 뿐, 팔푼이와 덕순이에 대해서 거울처럼 환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팔푼이와 덕순이의 나이는 둘 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팔푼이는 남자였고, 덕순이는 여자였다. 하지만 이 둘은 무슨 부부 사이라거나 형제지간이라거나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또한 동시에 우리 마을에 나타난 적은 몇 번 없었다. 팔푼이와 덕순이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불쑥 각설이처럼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가 쇠기러기처럼 그렇게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그 지저분한 누더기 옷을 덕지덕지 걸친 채.
우리는 팔푼이와 덕순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먹고 사는지도 잘 몰랐다. 둘의 닮은 점은 그렇게 불쑥 우리 마을에 제각각 나타나 찬밥과 김장김치를 얻어,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볼이 터지도록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었다. 또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날이 저물면 팔푼이는 주로 들판에 쌓아둔 짚더미 속에 들어가 잤고, 덕순이는 마당뫼에 있는 고인돌 아래서 버려진 담요나 가마니를 잔뜩 덮고 잤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아~ 절씨구씨구 들어간다아~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와아아~ 또 팔푼이가 나타났다아~"
"기차에 깔려 죽으모 우짤라꼬 저라고 있노?"
"그래도 저기 정신이 조금은 있는 모양인기라. 기차 오는 소리만 들맀다카모 놀란 토끼맨치로 산속으로 마구 달아난다카이."
팔푼이가 주로 돌아다니는 곳은 철길 주변이었다. 그 철길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상남역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진해, 서로는 마산을 이어주는 십이열차가 다니는 철길이었다. 또한 팔푼이는 예전에 누구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나타나기만 하면 늘 그 호랑이 이야기를 고래고래 내지르며 그 철길 주변을 마구 돌아다녔다. 하지만 누구에게 호랑이를 잡아주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인지도 아무도 몰랐다.
"팔~팔~팔푼아~ 오데 갔다 오노 팔푼아~ 호랑이 잡으로 갔다 온다 팔푼아~ 잡은 호랑이는 우쨌노 팔푼아~ 엿 바까(바꿔) 묵었다 팔푼아~"
"호랑이가 아니라 산토끼 한마리라도 잡아오모 용서해준다."
"저 넘의 손이 큰 일을 낼라꼬~ 누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해라 카더노. 미친넘이라꼬 함부로 약속했다가 잘못하모 니가 그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 말이다."
우리들은 팔푼이가 나타나면 멀리서 자갈을 집어던지며 그렇게 놀렸다. 하지만 팔푼이는 우리들의 그런 행동과 놀림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팔푼이를 놀리는 우리들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우리는 팔푼이를 종종 놀려먹기는 했지만 산토끼를 잡아오면 용서해준다는 식의 그런 약속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히히히~ 이히히히~"
"덕~덕~덕순아~ 오데 갔다 오노 덕순아~ 친정 갔다 온다 덕순아~ 아(아기) 낳고 오나 덕순아~ 낳은 아는 우쨌노 덕순아~ 밥하고 바까 묵었다 덕순아~"
덕순이가 주로 돌아다니는 곳은 마당뫼 근처였다. 덕순이는 몸집이 무척 컸다. 언뜻 보면 김장독이 걸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옷을 너무나 많이 껴입고 있었다. 대충 살펴보아도 스무 벌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덕순이가 찬밥과 김장김치를 볼 터지게 먹는 것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그래서 하루는 나도 슬쩍 집으로 돌아와 덕순이처럼 그렇게 김장김치를 쭈욱쭉 찢어 찬밥에 얹어 먹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덕순이가 배가 동산만하게 부른 채 우리 마을을 찾아들었다. 첫눈에 바라보아도 아기를 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누구의 씨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여기저기 마구 싸돌아다니다가 부랑배들에게 당한 게 분명했다. 그날, 우리 마을에서는 덕순이 때문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저걸 우짠다 말이고. 다른 마을로 후두카(쫓아) 보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네 난감해. 하필 저런 때 저기 우리 마을로 찾아들 거는 또 뭐꼬."
"우짜것노. 일단은 우리가 덕순이 아를 받아주야 할끼 아이가. 저대로 놔두모 저기 아로 낳다가 죽을 수도 있다카이. 그라모 또 우짤끼고."
덕순이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덕순이는 정신이 영 달아난 것은 아니었다. 덕순이에게는 가끔 정신이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냇가에서 살얼음을 깨고 세수를 한 뒤, 입술을 제법 빨갛게 칠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어머니들에게 인사를 한 뒤 더듬더듬 말을 걸기도 했다.
덕순이는 그렇게 우리 마을 어머니들의 도움으로 튼튼한 사내아기를 무사히 낳았다. 하지만 그 아기를 키우는 것도 문제였다. 또 그 아기가 정상적인 아기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덕순이의 그 통통한 젖꼭지를 힘차게 빨고, 제법 세차게 우는 것으로 봐서는 큰 탈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덕순이에게 그 아기를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덕순이가 그 아기를 품에 꼬옥 안은 채 한번도 떼놓지를 않았다. 마을 어머니들이 아기에게 조금 다가가기만 해도 순식간에 눈을 부라리며 벽을 향해 홱 돌아앉았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뒤부터 덕순이는 정신이 제법 말짱해진 것만 같았다. 맘마, 하면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덕순이를 바라보면 아주 정상적인 산모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