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유시민 칼럼> 그들이 주장하는 '편파·허위 보도'의 근거는?

등록 2002.07.05 13:13수정 2002.07.0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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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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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한나라당은 5억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한나라당이 서울지법에 제출한 소장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5월 5일 밤 11시 30분부터 50분간 방송된 시사다큐 프로그램 'MBC 스페셜'의 '국민참여경선, 제1부 정치 시민이 바꾼다'에서 박신서 시사제작2국장과 김상균 프로듀서는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고 이회창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편파적이거나 허위의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한나라당에 '심각한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여기서 핵심은 문화방송이 '편파적이거나 허위의 사실을 보도'했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한나라당은 소장에서 그 대표적인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노무현 후보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 널리 알려진 정대화·조기숙·유시민·추미애 등 출연자들로 하여금 한결같이 '한나라당의 경선은 명분에 밀리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한 것이다. 안했으면 좋겠지만, 민주당이 하고 있는 것을 모방이라도 하지 않으면 민심으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입한 것이고…. 노사모는 아래서부터 일어난 혁명이다'라고 평가하게 함으로써 지극히 편파적인 내용을 방송하고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한나라당을 폄하하여 명예를 훼손했다."

한나라당, 정말이지 유치해서 같이 못 놀겠다. 그래, 나 노무현에 우호적인 사람 맞다. 정대화, 조기숙 교수도 그런지는 그 사람들 머리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나야 내놓고 노무현 지지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좋다. 그런데 노무현에 우호적인 사람은 시사다큐 프로그램 인터뷰 좀 하면 안 되나?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사람만 해야 하나? 뭐?

'노사모는 아래서부터 일어난 혁명이다'라고 평가하게 했다고? 웃기고 있네. 도대체 누가 나한테 그런 평가를 '하게 했다'는 말인가? 박신서 국장? 본 적도 없다. 김상균 프로듀서? 그 사람이 뭔데 나한테 뭘 하게 해? 그 양반이야 전문가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그대로 소개한 것뿐이지. 한나라당 사람들은 자기네가 집권했던 시절에 방송인들을 시켜서 '무언가를 하게 한' 경험이 많아서 아직도 그런 줄 아는 모양인데, 정신 차리시오 한나라당. 세상 바뀐 지가 언젠데.

한나라당이 마지못해 국민경선을 했다는 견해가 편파적이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도 방송이 보도하면 '편파적인 허위 사실'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이회창 당시 총재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손꼽는 정치인이, 해봐야 의미도 없는 걸 민주당 흉내를 내려고 쓸데없이 하잔다며 국민경선 주장한 한나라당 사람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다. 누가 어디서 언제 그랬는지 밝히라면 법정에서 밝혀드리겠다.


한나라당은 'MBC스페셜'이 민주당 국민경선과 노사모를 헐뜯지 않는 게 불만이다. 소장을 보면 그런 불만이 철철 넘쳐난다. 음모론과 이인제 후보 사퇴, 돈경선 시비가 한나라당이 보는 '객관적 사실'인데 이런 걸 부각시키지 않은 데 분개한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과 이회창이 등장하는 횟수, 시간, 배경음악까지 모두 비교해서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김상균 프로듀서, 이 사람 '프로'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미리 대비하느라 고생 엄청나게 했다. 노사모하고 균형을 맞추려고 실체도 불분명한 '창사랑' 회원들, 자꾸만 카메라를 피하는 사람들한테 사정사정해서 겨우 인터뷰를 했다.


방송의 시사다큐는 단순한 보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영상예술 작품이다. 그는 작품의 예술성을 스스로 파괴해가면서까지 내용도 없는 '창사랑' 인터뷰를 내보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5억원이라는 거액을 물어내라고 나선 건 웬만큼 철판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적반하장'이다.

언론인은 독자적인 관점에서 많은 사실들 가운데 중요한 사실을 선택하고, 그렇게 선택한 사실들을 해석해 인과관계를 맺어준다. 'MBC스페셜'도 그런 선택과 해석의 산물이다. 한나라당은 선택과 해석의 관점을 자기네가 지배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회창씨가 집권하면 언론에 무슨 일이 생길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 <오마이뉴스2002>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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