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의 주체성을 찾아서-1

한흥섭 지음 <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 문화>

등록 2002.04.22 17:20수정 2002.04.2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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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흥섭 씨는 국내에 '흔치않은' 음악미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흔치않다'는 것은 그가 민족음악의 미학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악보다 서구음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고, 학문적 연구 또한 국악보다 서구음악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음악미학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단적으로 말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의 음악미학에 대해서는 곧잘 얘기하면서도, 우리 음악에 대한 미학은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흥섭 씨는 흔치않은 음악미학자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에게서 전통의 음악사상 내지 음악미학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음악미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현재 우리(음악계)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가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과 외래음악의 주체적 수용'이라면 무엇보다도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과 '외래음악의 주체적 수용'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명제인데, 이를 연결해주는 매개항이 바로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음악의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우리 민족의 독창성 또는 심미의식이다. 따라서 면면히 이어온 전통음악의 독창성이나 심미의식에 대한 이해 없이 전통음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외래음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도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p-14)

그렇다. 민족음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음악에 대한 사상과 미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 동안 민족음악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주목할만한 음악적 성과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여기서 원인을 찾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악기인가?

저자는 우리의 전통음악-구체적으로 삼국시대 음악-을 파악하기 위해, 외래 악기의 수용과정을 밝힌다. 즉 외래음악에 대한 삼국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수용 태도를 '외래 악기의 주체적 수용과정'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악기를 택했을까를 우선 집고 넘어가자. 다시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새로운 악기의 소개나 수용은 음악 양식의 변천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이는 새로운 악기를 사용한 연주 활동은 이전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 문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악기는 단지 음악을 위한 하나의 물적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문화의 '창조성'과 '주체성'이 융합되어 나타난 '독특한 심미의식'을 구체적으로 담보하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p-15)


즉 악기는 그러한 의미를 지니는 매체이기 때문에 외래악기의 개량은 단순히 음악적 표현을 위한 기능적 수단의 물질적 변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래음악의 '독창적인 수용'의 징표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악기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삼국

이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서 전해진 악기를 자신의 음악관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왕산악이 중국에서 전래된 칠현금을 기존의 고구려 현악기와 비슷하게 개량하여 우리 민족의 첫번째 개량악기인 거문고를 만든 행위와 가야국의 가실왕이 당나라의 악기인 쟁을 개량하여 가야금을 만든 행위 등 삼국이 외래 악기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면모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적인 악기개량이 음악 창작의 자주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주체적인 음악관 내지 음악사상이 바탕이 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특히 현재 세계에 민족을 대표하는 악기로 널리 알려진 가야금을 만든 가야국의 가실왕의 언급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가실왕은 악기를 주체적으로 개량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개량된 악기로 우리 민족의 정서에 들어맞는 곡조를 만들도록 했는데,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니 성음을 어찌 일정하게 할 것이냐'라고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가실왕의 언급은 주체적인 음악관을 표출하는 우리 나라 최초의 문헌 기록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가실왕은 우리 나라 음악사상사에서 최초로 주체적인 음악사상을 구현한 인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p-55~56)

즉 삼국 시대의 악기개량이 단순히 악기를 조금 바꾼 것이 아닌 독창적인 음악관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새로운 음악 세계의 주체적 수용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 악기개량이 현대에 남기는 메시지

사실 우리 민족처럼 독자적인 악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아마 이 간단한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은 독자적인 악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로부터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째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의 악기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어떤 현재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알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치적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삼국이 중국으로부터 악기를 수용했던 당시는 중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주변국 내지 적국의 관계였고, 특히 문화적인 면에서 그들의 강력한 예악사상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먼저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삼국은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악기 개량을 통해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음악 문화를 정립했다. 즉 독창적인 음악관 내지 음악사상으로 당시 강력한 힘의 우위를 차지하던 제국의 음악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선인들의 태도는 전통음악의 보편화와 현대화를 위해 악기 개량은 물론 양악기와의 협연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요즈음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p-91)

사실 이제는 제국주의적 서구 음악문화의 유입 앞에서 우리 음악의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민족음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펴낸 곳 : 책세상문고
펴낸 날 : 2000년 5월 25일
판형 : B6
쪽수 : 136쪽

덧붙이는 글 펴낸 곳 : 책세상문고
펴낸 날 : 2000년 5월 25일
판형 : B6
쪽수 : 136쪽

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문화

한흥섭 지음,
책세상,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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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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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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