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와 함께 떠나는 불교 미술 6

'제작 방법과 별자리' 운주사의 2가지 논쟁

등록 2001.02.25 19:58수정 2001.02.2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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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바로 운주사 탑과 불상은 어떻게 제작되었는가와 과연 탑과 불상이 별자리를 나타내는 가이다. 특히 별자리와의 연관성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기에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운주사 탑과 불상의 제작 방법을 밝혀라


운주사에 관한 궁금증 하나! 과연 어디에서 이 커다란 돌을 많이 가지고 왔을까?

이에 대한 답은 운주사 주변 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아직도 석탑과 석불 제작 당시 돌을 운반했던 흔적들이 발견된다. 와불에서 칠성바위로 가는 서쪽 산허리 주변의 암반에는 불상을 떨어낸 채석장이이 있고 그 채석장과 칠성바위 사이에서는 암반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깊이 패인 마멸 흔적도 확인된다.

채석장과 암반 마멸 흔적은 운주사 천불천탑을 어떻게 제작했으며 10t 정도의 칠성바위 같은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운반하였는 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암반 마멸 흔적은 거중기(擧重機)같은 운반기구로 칠성바위나 탑의 재료들을 들어 옮기다가 밧줄이 암반에 마찰하여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게가 1백t 정도는 족히 나가는 암반에 조각한 초대형 석불좌상·입상은 어떻게 일으켜 세우려 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와불! 과연 세우려고 했을까?

지금의 기술로도 1백t을 들어올리려면 3백t 정도의 크레인을 동원해야 한다고 하는데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비탈진 야산 정상에 자리한 이 거대한 돌부처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으켜 세울 수 없는 돌부처를 암반에 조각했을 리는 없다. 여전히 이에 대한 답은 '?' 이다.


다만 와불의 옆을 자세히 보면 바위를 떼어낸 흔적이 있다. 조사에 의하면 그 떼어낸 돌이 바로 와불 앞에 있는 일명 '머슴부처'라고 하고 와불의 다리 부분에 떼어 내려다 만 흔적이 있는데 한 번 확인해 보기를..

이런 점에서 와불도 떼어내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머슴부처의 돌 부분과 달리 와불의 어깨 부분은 커다란 암석덩이로 이뤄져 있어서 떼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만약 떼어 낸다면 상당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와불은 그 자리에 그렇게 누워있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부근에 와불을 안치 자리인 대좌(연꽃 모양의 불상을 모시는 자리. 연화좌, 연화대좌라고도 함)가 보이지 않고, 세운다고 해도 어디에다 어떻게 모실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으므로 애당초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도 몰라. 오로지 와불만이 알고 있지.'
경사진 곳에 세워진 석탑도 그 곳에 굳이 세운 이유와 더불어 세운 방법도 의문을 갖게 한다. 그에 대한 답은 각자가 알아보도록. 본인도 알아 보고 있는 중임.

운주사에 관한 논란 '과연 별자리 구현장인가?

운주사는 최근 몇 년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는데 이는 아마도 'KBS 역사 스페셜' 덕분일 것이다.

지난 99년 4월 '역사...'에서 운주사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난 뒤 운주사는 갑자기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 소풍이나 답사의 중요지로 부상했고, 개인적으로 구경오는 사람들도 훨씬 늘어났다. 단지 방송이 되어서가 아니고 방송 내용 중에 운주사의 탑과 불상의 위치가 밤하늘의 별자리를 표현했다는 부분이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본인도 한 때 그 사실을 믿고 맑은 날 밤에 운주사에 가서 별자리와 비교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오랫동안 운주사의 칠성바위를 연구한 한 천문학자가 제기했는데 그의 말을 빌자면 운주사의 탑·불상의 배치가 밤하늘의 별자리(1등성)의 배치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역사...'는 그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불교탱화를 끌어들였다. 탱화란 불교경전을 그린 의식용 불화로서 족자형태로 자유롭게 걸 수 있는데 주로 법당의 불상 뒤에 걸린다. 그런데 탱화 중에 칠성 탱화라는 것이 있는데 그 탱화 속의 부처님 배치가 북두칠성과 일치하고 동양의 별자리인 28수와 일치하는 탱화도 있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사람들은 더욱 '역사...'의 주장에 수긍하게 되었다.

이런 설명은 운주사의 탑과 불상의 배치에 관한 의문을 아주 쉽게 해결해준다. 왜 그렇게 험난한 곳에 세웠는가에 대한 대답을...

※ 28수 : 2500년 전 주나라 때부터 사용. 달의 공전주기인 27.3일을 주기로 하여 백도를 1주한다. 달이 하루에 한 수씩 동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보고 28수를 정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토성의 태양에 대한 공전주기에 관련시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별자리 주장에 대한 반박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 문제점은 없을까?

이제부터 '역사...'의 주장에 관한 문제점을 알아보자. 이러한 문제 제기는 지난 99년 7월 과학 동아 전용훈 기자가 쓴 기사에 나와있다. 이에 <과학 동아>의 동의를 받아 여기에 그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싣는다.

'역사...'의 주장에 대한 첫 번째 의문점으로 발굴 보고서의 운주사 탑 배치도는 '현재'의 배치도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표시된 위치는 12∼13세기 탑이 세워질 당시의 위치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탑이 있었던 자리로 확인되는 곳이 이곳 말고도 세 곳이 더 있다. 만일 탑 배치가 일등성 배치를 닮았다면 이들 탑 자리들도 밝은 일등성 별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별자리의 밝은 별을 탑으로 동정할 때 기준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일등성 정도의 밝은 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비교 대상으로 든 별 중에는 2.6등성의 뱀자리 알파별, 2.5등성의 안드로메다자리 알파별, 심지어 3.0등성의 황소자리 베타별도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방송에서 제시한 성도의 시작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쓰는 현대적인 성도는 시작점을 거의 대부분 3월 22일 춘분점으로 삼는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성도는 시작점이 1월 19일에 위치해 있다. 왜 이 지점에서 성도가 시작돼야 하는지에 대해 그 천문학도는 '탑 배치와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동양의 관념에서는 동지가 더 중요시 됐다. 만일 운주사를 세웠던 사람들이 천상의 질서를 지상에 구현하려 했다면 이들은 사찰에 들어섰을 때 동지로부터 펼쳐지는 하늘의 모습을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양력 1월19일은 '대한(大寒)'에 해당하는 날인데 이 날이 하늘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지금과는 다른 고려 시대의 천문관념

끝으로 '역사...'의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사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하늘의 모습을 본뜬 탑을 세우려 했다면 그들은 고려시대의 천문관념에 따라 하늘을 그리려 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전통 천문관념에서는 밝은 별이라고 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밝은 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서양의 천문지식에 바탕한 생각일 뿐 전통천문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요시된 별과 별자리들이 따로 있다.

고려 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모습을 지상에 구현하고자 했다면 북극성과 북두칠성, 3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으로 천자가 살고 있는 곳) 28수의 별자리이야기를 그리고자 했을 것이다. 28수의 별자리는 황도대 주변에 펼쳐져 있지만 각 별자리의 기준별인 거성은 자기 별자리에서조차 가장 밝은 별이 아니다. 가장 밝고 화려한 서양 별자리로 알려진 오리온자리에서 13세기의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리온의 허리에 해당하는 일렬로 늘어선 삼태성일 뿐이고, 밝고 거대한 베텔규스나 리겔은 의미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동양의 별자리와는 관련이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적도대를 중심으로 한 격자형 성도는 물론 천상열차분야지도식의 전통 성도에서도 28수의 배치를 표시해 보았다. 그러나 공통점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또한 만일 별자리가 아니라면 중요한 별을 위주로 한 것일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28수의 기준별의 위치를 표시해보았다. 결과는 역시 허사였다.

이상이 과학 동아에 실린 내용이다.
'역사...'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다.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본인의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그 주장이 맞기를 바란다. 하지만 문제는 그 근거가 너무 짜 맞추기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자체 검증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역사...'의 주장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위에 든 반박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운주사의 건립자가 동양적 별자리에 문외한이고 단지 밤에 보이는 별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시작을 한 겨울에 했고 그 때의 별자리를 표시해서 제작한 것이라면... "

다음 기사 : 운주사는 누가 창건했나? 도선 국사와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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