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이 없으니, 벽돌로 치고 밀어버려?

등록 2000.11.13 09:17수정 2000.11.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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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오후 대학로. 민주노총 주최의 노동자대회가 한창이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식전행사에 이어 각급 단위별 노동조합에서 온 대표자들의 김대중 정권, 특히 대우차 문제의 처리 방법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오후 4시를 한창 넘겨, 대회에 참가한 노동자, 학생, 이주 노동자들은 대학로에서의 행사를 접고 종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미리 신고된 탓인지 종로 5가까지는 별다른 제지가 없었으나, 당국은 거기서부터 참가자들의 행진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경찰의 시위진압일 지 모르나, 그게 아니었다.

경찰은 방패를 앞세우고 어른의 주먹보다 더 큰 벽돌들을 행사참가자들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당연히 코피가 나고 머리가 터져 선혈을 흘리면서 후송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1년전, 당시 경찰청장의 '최루탄없는 시위진압정착'이라는 자랑스러운 발표가 얼마나 파렴치한 것이었는 지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날 경찰의 행위는 시위진압이 아니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시민에 대한 위해행위에 불과했다.

한시간 뒤 종로 3가. 여전히 경찰과 행사참가자들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었고, 한 옆에서는 길가던 시민과 전경 중대장과의 입씨름이 한창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길가던 시민에게 전경이 케첩묻은 방패로 가격한 것이었고 따라서 전경중대장에게 세탁비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일견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 시민은 자신의 이유없이 침해받은 권리를 되찾겠다는 단호한 자세였다. 하지만 방패에 둘러싸인 채, 부하들의 어깨위로 올라앉은 중대장은 줄곧 비아냥거리기로 일관했다.

"할말있으면 저쪽(행사참가자)에 들어가서 해."
"당신이 영웅이야? 공무집행 방해하지 말고, 집에나 빨리 가."

두어번의 설전이 더 오간뒤, 중대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부하들을 향해 "야, 저거 밀어버려"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먼저 흥분해서 그 중대장을 향해 따지기 시작했다.


"밀어버려? 어디서 경찰이 시민한테 그 따위 말을 해!"
"니가 그러고도 이 나라 경찰이냐?"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는지 중대장은 무전기를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렸고 공무를 집행중이라기에 소속이 어떻게 되느냐고 세차례나 물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윽고 한 시민은 그 중대장을 방패로 둘러싸고 있는 전경들을 향해서도 한마디 꾸짖었다.


"대한민국 경찰로서 지금 이자리에 이렇게 서 있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돼."

세탁비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던 시민은 동료들의 만류로 발길을 돌렸고 시민들은 다시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날의 '별일 아닌' 실랑이는 대한민국 경찰이 시민을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 지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시위대는 돌로 치고, 따지는 놈들은 밀어버려? 흩어진 사람들 사이로 종로경찰서장의 선무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들의 아들들인 저희 경찰은 시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읽으신 분 중에서 전투경찰의 소속을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메일로 좀 알려주십시요. 방패에 적힌 네자리 숫자가 자신들의 소속을 나타내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그 이상은 알아낼 방법이 없더군요.

덧붙이는 글 기사를 읽으신 분 중에서 전투경찰의 소속을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메일로 좀 알려주십시요. 방패에 적힌 네자리 숫자가 자신들의 소속을 나타내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그 이상은 알아낼 방법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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