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비리 종합선물세트 경인여대

이 처참한 사학을 어찌할 것인가

등록 2000.06.03 05:54수정 2000.07.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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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박○○(경인여대 산업환경공학부 99학번)학생은 지난해 12월, 경인여대 학보 독자투고란에 글을 기고하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소제목이 암시하듯 글의 내용은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 글이었다.

그는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 나올 법한 붉은색 벽돌 건물'이며 '조각공원을 연상케하는 학교'에 대한 기대가 허울이었다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었다. 여느 대학이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인여대는 달랐다. 문제의 경인학보 44호는 발간 당일인 99년 12월 10일 긴급 수거되었다. 학장의 지시였다.

이 건과 관련해 학보사 편집장, 지도간사, 담당교수가 학장에게 불려가고 사유서를 썼다. 물론 박00 학생도 학교에 나오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미 종강을 했기에 딱히 학교에 갈 이유가 없었던 그는 몇 번의 거절 끝에 학교를 찾았다.

"내가 쓴 글은 어떤 불손한 의도에서가 아닙니다. 크게 문제될 사안도 아닙니다. 학교에서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한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작성한 사유서의 내용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문장 하나 하나를 지목하며 각 문장의 의도를 물었다. 그리고 충고했다. '네 의도는 이해하나 너 땜에 고충을 겪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섣부른 행동이었다'라고.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무슨 책이 필요한지 묻더라는 것이다. 독자투고의 글에서 그는 '∼비싸기만 하고 영양도 맛도 없는 식당, 필요한 책은 찾을 수 없는 도서관...'이라고 잠깐 언급을 하였다. 정말 필요한 책이 궁금해서 친절하게 전화한 것일까? 진정 그렇다면 최고수준의 학사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일 것이다.

박은주 학생은 오래지 않아 휴학했고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 휴게실에 만난 그는 별로 기억하기도 싫은 눈치였다.
"그 글요? 다시 보기도 싫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이 이런 글 하나 땜에 사유서를 쓰고 학교에 불러가고 합니까? 유치하기도 하고 코메디 같은 일이죠. 안 그래요?"
이어 그는 학교를 졸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기획주임부터 잔디깍기 기능직까지

95년 7월 3일 유○○씨는 경인여대 기획주임으로 발령났다. 그러나 그가 학교를 떠날 때, 잔디깍고 정화조 청소하는 기능직이었다.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의 새 발령처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직원들이 시간이 돼도 퇴근할 생각을 않고 눈치만 보았고 그 흔한 직원단합대회도 없었다. 학사행정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씨는 당년도 예산을 다음해로 이월시킬 수 없음에도 특정 원칙없이 이뤄지는 회계와 전임교원을 허위로 작성해 교육부에 보고하는 인사문제를 학장에게 보고하는 한편,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썼다.

이듬해인 96년 2월. 그는 서무주임으로 인사 이동하였고, 3월에 공고사직을 통해 관두라는 통보를 받는다. 유씨는 내키지도 않은 차에 퇴직을 결심하고, 다른 직장 구할 기간을 고려해 3개월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요구하였다.

그러나 학교는 거부했고 대신 그를 학교법인으로 인사이동을 냈다. 그리고 재단소유의 회사인 서울 금천구에 소재한 '태양철관'으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유씨는 노동부에 제소했다. 이와는 별도로 직원들도 96년 4월 1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씨 복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놀란 김길자 학장은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찾았다. 제발 노조만은 안 된다며 눈물로 호소하였다.

애초에 직원들도 정상적인 근로환경에서 맘 편히 일하는게 주요했기에 학장과 타협을 보았다. 유○○씨를 복직시키는 대신 노동부 제소취하와 노조를 해체하고 노사협의회를 구성하겠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노조에 참여한 직원들은 하나둘 정당한 사유없이 학교를 떠났다. 유00 씨는 관리주임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창고담당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잔디 깎고 정화조 청소 등 학교 시설을 관리하는 기능직 이동을 지시받았다. 이후 학교 측에선 근무태만 등의 이유로 3개월 직위해제를 시켰다가 결국 해임하였다.

유씨는 학교를 상대로 직위해제취소 청구소송을 냈으나 역부족이었다.
"증언을 해줄 증인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나중에 제 편에서 증언해준 두 분도 해직직원이었습니다. 학장은 현직의 직원뿐 아니라 전출간 직원에게도 사람을 보내 증언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경인여대는 백씨가족 왕국입니다. 세상에 남편이 이사장하고 처가 학장하고 아들이 기획실장하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삼자 중 어느 누구의 눈밖에 나면 그때부터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힘들어집니다."

'차라리...시간강사가 맘 편합니다'

시간강사는 속된 말로 보따리 장사꾼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임교수 임용의 문턱이 높은 교육 여건에서 시간강사는 전국의 대학을 떠돌며 자신의 지식을 날품팔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심경이야 오죽하겠으랴.

교육자란 이름에 지고의 순결을 요구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관철시키는 우리사회의 이중잣대와 대부분이 실력에서 절대 꿀리지 않는 시간강사들의 학문적 자손심의 상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또한 잦은 이동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시간강사가 더 편하다고 말하는 교수가 있다. 주인공은 97년 후반기부터 올해 2월까지 경인여대 교수로 재임했던 김○○씨이다. 그는 '경인여대에 있을 때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며 지금도 '왜 내가 그만두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교육자의 길을 택한 이유까지 언급하며 해직의 부당함을 설명했다.
"제가 교수란 직업을 택한 이유는 자존심 상하지 않고 내 할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원래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좋아했고요. 하지만 경인여대에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할 수 없었어요.....제가 문제가 돼서 학교를 그만두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강의평가도 좋았고 연구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1년에 100%가 원칙이지만 저는 200%의 연구활동을 했습니다. 한해 책도 두 권내고 논문도 2개 썼습니다. 학생들도 저를 잘 따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제가 안티기질이 있는 성향은 아니거든요..."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애당초 그는 계약직이 아니었다. 1년 가계약을 맺고 그 이후 정식 임용을 조건으로 학교에 온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맘대로 이를 변경하였다. 그의 선택권은 변동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에 한정되었고 자세한 내용도 몰랐다.

교수의 출퇴근은 꼼꼼히 기록되어 재임용 평가에 반영되었고 하다못해 복사 한장 할라쳐도 일일이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세례 받지 않으면 불이익이 간다 길래 학교에서 세례까지 받았고, 통상 1주에 60시간 이상을 학교에 붙어있었다는 김○○씨.

그러나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학교의 퇴직권고 사유가 거창하다. '학교발전에 기여를 못했다'가 그것이다. 그는 이해하기 힘들어 부친에게 이를 물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돈을 내라는 얘기로 받아들였다. 차마 웃지 못할 일화이다.

현재, 부산에서 시간강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차라리 지금이 훨씬 편해요. 경인여대에서 교수는 급사수준의 대우를 받습니다."

정세는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지난 5월 23일 경인여자 대학(학장 : 김길자, 이사장 : 백창기,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548-4)의 학생들이 재단 비리와 비민주적 학사행정을 비판하며 학장실을 점거하자 같은 날 교수님은 교수협의회를 만들고 학생들을 적극지지 하였다. 다음날인 5월 24일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역시 학생편에 섰다. 학교의 삼주체가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모두 나선 것이다.

관련기사 : 경인학보가 전하는 경인인의 외침

경인여대는 여대이다. 그리고 2년제이다. 따라서 99, 00학번의 어린 여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흔히 N세대로 불려지는 세대이다. 개인주의를 종교처럼 신봉한다고 매스컴은 확대 유포했다. 하지만 이들은 '80년대 광주항쟁, 2000년대 경인항쟁'을 4자 구호로 외친다.

교수 역시 대개 학생이 데모를 하게되면 관망하거나 점잖은 충고 몇 마디가 상식이었다. 하지만 경인여대는 교수님들이 재단과의 싸움에서 브레인역할을 하고 있다. 각종 비리들을 선별하고 이후의 전략을 내온다.

직원은 또 어떤가. 주로 학교 편에서 학생의 물리적 공세를 방어하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이들은 가두시위에서 차량을 지원하고 학생들과 함께 구호를 외친다.

정세가, 학교와 재단의 부패가, 그만큼 심했다는 말인가. 경인여대 비대위에서 발표한 비리는 첨부자료까지 합하면 소책자 분량의 내용이다. 회계비리 및 횡령, 교재판매 폭리 및 횡령, 학교 식당 리베이트, 학생자치활동 방해, 교권침해 및 교수,직원 인사관련 비리...

기자와 전화 통화한 어느 퇴직 교수는 '너무나도 썩어서 어느 한곳을 도려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교가 문닫는 도리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 경인여대의 문제는 교육부의 개혁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시험지 따위가 아니다. 교육부가 있어야 할 이유다. 한총련, 전학협, 참대학이 나서야 한다. 경인여대는 대한민국사학비리 종합선물세트이다. 아직도 구시대의 사고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사학에 대한 전범을 만들어야 한다면 경인여대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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