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웅군, 실종직전까지 기관원들이 따라다녔다"

오마이뉴스 공개추적-두 서울대생 실종 10여년, 노진수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④

등록 2000.05.10 11:34수정 2008.04.0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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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웅 씨의 가족들은 지난 5월 3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실종당시 안씨의 근황을 잘 아는 사람으로 주저없이 이광복(60세)목사를 꼽았었다.

 

어머니 백옥심(62세)씨는 "이목사는 치웅이의 성격·장래·고민 등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신학대 진학과 미국유학까지 권유했다"라고 말했다.

 

5월 8일 12시 한국성서대학교 갈맬관 1층 신학연구소. 80년대 초중반 암사동 새암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안치웅 씨와 인연을 맺었던 이광복 목사는 안씨가 실종되기 전인 87년 가을부터 이곳으로 옮겨 일해오고 있었다. 이목사는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 안치웅씨를 만난 것은 언제인가.

 

"알게 된 것은 꽤 오래됐다. 서울대학 입학때부터다. 그때 안씨 가족이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왔었다. 당시 안씨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안씨가 대우어패럴사건으로 관악경찰서에 구속됐을 때 면회도 했다. 안씨가 운동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때 나와 상담을 수시로 했다."

 

- 그 상담에서 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신앙과 운동과의 관계였다. 나는 그 친구를 신앙으로 인도하려고 했다. 운동 때문에 믿음생활을 잘 하지 못하고, 또한 운동은 신앙생활과 배치되는 것이 있으니까 돌아와라,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한 일년동안 계속적으로 상담했다. 그래서 그가 마음의 결정을 했고, 신학대에 가기로 했다."

 

- 처음에 교회에 잘 다니지 않았던 안치웅씨가 신앙이 돈독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87년도부터다. 나와 이야기를 통해서다."

 

- 안치웅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성격은 내성적이고, 꼼꼼했다. 무엇인가에 빠지면 정신없이 빠지는 사람이다. 외모를 보면 여성적인 것도 있는데, 내면적으로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너무 똑똑하고 좋은 사람인데 아깝다."

 

- 신학대학을 가기로 결정을 했는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가려고 했다. 교회에 속한 노회에서 보는 목사후보생고시를 패스해야 총신대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을 보는 자격이 된다. 그래서 안씨는 그 고시를 봤다. 87년 가을 아니면 88년 봄일 것이다. 노회에 그 기록이 있다."

 

- 과목은?

 

"영어와 상식, 성경. 세 과목이다. 워낙 머리가 좋아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특히 영어는 아주 잘 봤다."

 

- 총신대 신학대학원 입학시험도 봤었나.

 

"보지 않은 상태였다. 보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반대를 해가지고…."

 

- 어머니가 반대한다는 이야기도 안씨가 했는가.

 

"했었다. 가고 싶은데 어머니가 반대한다면서 굉장히 고민에 빠졌었다. 안씨는 목사보다는 신학을 공부해서 교수를 해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목사가 되면 고생하니까 어머니 입장에서는 안타까워서 반대한 거다."

 

- 안씨의 실종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실종 며칠후 어머니한테 들었다. 전화통화하고, 그 집에 위로차 갔었다."

 

- 같이 찾아보지는 않았나?

 

"찾아본 것은 없다. 신앙인이니까 기다려보자, 어디가서 죽지는 않았을테니까, 생명은 하나님께 달리 것이니까 기도하자. 그 정도지 뭐 찾아보고 그런 것은 없다."

 

- 실종 당시 신앙이 깊어졌던 것 같은데 기도원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없는가.

 

"나는 전혀 그런 기미를 못느꼈다. 기도원에 가려고 해서 짐을 챙겨야한다. 하다못해 성경책이라도. 그런데 주민등록증이고 뭐고, 돈 한푼 없이 나갔다고 어머니한테 들었다."

 

- 교인들 중에 갑자기 잠적해서 기도원에 들어가있는 사람도 있는가.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다 알리고 가고 챙기고 간다."

 

- 그렇다면 종교적인 이유 말고 다른 자발적인 가출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 위장취업같은….

 

"당시 안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도대체 운동권 이론이 뭐냐' 했더니 무신론이라 그랬다. 그리고 맑스이론을 기초로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하고는 정 반대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신학대학원에 가는 걸로 굳혔고 운동을 그만하겠다는 언질을 분명히 했다."

 

- 구체적인 언질이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신앙과는 완전히 배치된다는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에 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런 생각·사상의 변화가 아니면 절대로 신학대학원에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씨는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위장취업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어떤 사람은 월북을 하지 않았나는 말도 하는데 나는 그런 쪽으로 보고싶지 않다. 하나님의 신앙으로 확실히 돌아왔는데 그쪽으로 가려고 하겠는가."

 

- 사고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글쎄…. 대한민국의 여러가지 상황으로 봐서 사고로 죽었다면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과 기미가 없을 수 있는가. 가능성은 있지만 희박하다."

 

- 그렇다면 안씨의 실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양면으로 보고 싶다. 당시만 해도 안씨에게 기관원들이 따라다니고 그랬다. 자신도 늘 그것을 의식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쪽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됐는지…. 혹은 운동권에서 벗어나니까 운동권 사람들이 또 어떻게 했는지…. 갈등 때문에 스스로 집을 나갔다고는 보기 힘들다."

덧붙이는 글 |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을 찾아 나섭니다.
오마이뉴스는 민가협(의장 임기란, 총무 남규선)과 공동으로 그대들이 이 하늘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노진수씨(대구 남구 대명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법대 2학년에 휴학중이던 1982년 5월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앞 지하독서실에서 기거하던 중 한밤중에 방문한 세 남자와 함께 떠났다고들 합니다.

그로부터 17년, 가족과 학우들은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냈지만 그 누구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안치웅씨(광주 동구 산수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무역학과를 1988년 2월 졸업한 후인 1988년 5월 26일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2년, 가족과 선후배들은 일간지에 '사람을 찾습니다' 광고를 내봤지만 당신은 연락해오지 않았습니다.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세월은 흘러 동시대를 살았던 당신의 친구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벤처기업 사장이 되고, 시민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 한둘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정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어디로 떠난 것입니까? 

오마이뉴스는 3명의 특별취재팀, 그리고 1800여 기자회원들과 함께 당신을 찾아나섭니다. 

(노진수, 안치웅씨의 행방과 관련해 도움을 주실 분은 오마이뉴스 1면 우측에 있는 '기사제보'란을 이용해 주십시오.)

2000.05.10 11:3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을 찾아 나섭니다.
오마이뉴스는 민가협(의장 임기란, 총무 남규선)과 공동으로 그대들이 이 하늘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노진수씨(대구 남구 대명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법대 2학년에 휴학중이던 1982년 5월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앞 지하독서실에서 기거하던 중 한밤중에 방문한 세 남자와 함께 떠났다고들 합니다.

그로부터 17년, 가족과 학우들은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냈지만 그 누구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안치웅씨(광주 동구 산수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무역학과를 1988년 2월 졸업한 후인 1988년 5월 26일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2년, 가족과 선후배들은 일간지에 '사람을 찾습니다' 광고를 내봤지만 당신은 연락해오지 않았습니다.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세월은 흘러 동시대를 살았던 당신의 친구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벤처기업 사장이 되고, 시민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 한둘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정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어디로 떠난 것입니까? 

오마이뉴스는 3명의 특별취재팀, 그리고 1800여 기자회원들과 함께 당신을 찾아나섭니다. 

(노진수, 안치웅씨의 행방과 관련해 도움을 주실 분은 오마이뉴스 1면 우측에 있는 '기사제보'란을 이용해 주십시오.)
#노진수 #안치웅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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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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