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현습지를 안내하는 정수근 사무처장
안미선
정수근 사무처장이 만났던 다른 현장의 이야기도 물어보았다.
"청도 삼평리 주민들과 함께한 '탈송전탑' 투쟁을 했어요. 주민들이 직접 도움을 요청했어요. 핵발전소의 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한 송전선로가 밀양과 청도를 거쳐 도심으로 가는데 주민들이 생존투쟁을 위해 반대 운동을 했지요. 환경운동이 별다른 게 아닙니다. 그들이 피해를 입고 도움을 청할 때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함께하는 과정입니다.
구미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 문제도 그 지역 사람들이 요청해서 찾아가 연대했습니다. 저는 환경운동은 현장성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가게 되면 그 특징을 알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되잖아요. 객체가 아닌 주체로 관계를 맺게 되니까 못 본 척할 수 없게 되고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남을 통해 사람이든 자연이든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운동을 이어 나가는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8월 28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와 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작년에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다가 노동자가 비소 중독으로 죽고 세 명이 다쳤다. 또 냉각탑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죽고, 지난 8월에는 하청노동자 한 명이 열사병으로 죽었다. 안동환경운동연합은 "199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총 1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인간의 권리와 강의 권리는 이어져 있다. 인간을 짓밟는 사회가 강물을 더럽히고, 강을 추방하는 사회가 사람들의 기본권도 저버리는 것이다. 죽거나 다치고 쫓겨날 위기에 놓인 이들과 환경을 함께 지켜내야 모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개발 논리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이익만을 염두에 둡니다. 다리를 만들고 공원을 만드는 건 인간이 편리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죠. 하지만 자연에 가보면, 그 사람들이 눈으로 못 보는 세상이 있어요. 그곳은 무수한 생물들이 사는 공간입니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인식 시켜주고 싶은 거예요. 그 자리가 무수한 생명들이 사는 공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될 때, 정책이 바뀔 수 있습니다. 장소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고 개발을 최소한으로 하고 생명체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는 환경운동은 보존 운동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변하게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 활동을 알리기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한다. "일기를 쓰듯" 기록하면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문제와 지역 환경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렸다. 그는 자연에서 본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의 일몰, 새벽 강물 속에서 눈을 마주친 수달, 멸종 위기에 놓인 새들의 소리, 날마다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빛...
"이 활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함께 공감을 나누면서 위로도 받았습니다. 저도 많이 성장했고 자연을 접하면서 힘도 많이 얻었습니다. 젊은 분들에게 이 활동을 많이 권하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가 일상 속에서 산과 강을 평소에 많이 찾으면서 자연과의 접점을 늘려 교감을 찾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연이 어떤 힘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본질적인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라드 맨리 홉킨스(영국의 시인)의 '신의 장엄'이라는 시에서 '신은 따뜻한 가슴과 찬란한 날개로 굽은 세상을 품에 안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곳에서 저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두 팔을 양쪽으로 활짝 폈다. 강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다시 강의 삶을 찾게 해줄 사람들이 되려고 이곳에 모이고 있었다. 이 강이 다시 살아나 사람들 곁에 흐르고 있으니 사람들도 몫을 다해 이 강을 지켜낸다면, 죽어가는 모든 강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강은 기필코 되살아날 수 있다고, 다 함께 흐를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필자 소개] 안미선: <다정한 연결>,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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