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4 06:57최종 업데이트 24.07.0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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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지난 6월 16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임영웅씨의 모습 ⓒ 임영웅 유튜브 채널

 
"저도 좀 몸이 근질근질하고 마음이 드릉드릉합니다."

정훈님, 가수 임영웅씨 좋아하시나요? 최근 그에 대해 희한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지난달 16일 유튜브에서 앞으로 출연할 프로그램에 기대감을 드러내며 한 말이 문제가 된 겁니다. '드릉드릉'이 '남성혐오' 표현이라는 지적 때문입니다.


'드릉드릉'은 코 고는 소리 등을 나타내는 의성어로 쓰였지만, 최근 커뮤니티 등에서는 '안달 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말에 대해 왜 '남성혐오' 논란이 일어나는지 의아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혐오 표현을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맘충', '짱깨', '김치녀', '깜둥이' 등이 대표적인 '혐오표현'이라 할 수 있죠. 인권위 정의에 따르자면 '드릉드릉'은 혐오표현으로서의 성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남성집단을 차별하거나 적의를 선동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드릉드릉'뿐만 아니라 '오조오억'(많은 수량을 뜻함), '허버허버'(허겁지겁 먹을 때),' 웅앵웅'(웅얼거린다) 등도 남성혐오 표현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단어 자체에 남성을 비하하는 뜻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들이 왜 '남혐단어'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요. 소위 '여초 커뮤니티'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말이라 남성을 비판할 때 종종 쓰일 수도 있다는 점이 유일한 공통점이죠. 

하지만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러한 표현 자체가 '남성혐오' 성격을 띠고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오조오억'이나 '웅앵웅'을 사용한 여자 연예인들이나 유튜버들이 비난을 받고 사과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카카오는 2021년에 '허버허버'라는 말이 사용된 이모티콘 판매를 중지한 바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혐오가 아닌 것'이 '혐오'처럼 승인되는 상황을 만들었고요.

임씨의 '드릉드릉'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입니다. 일부 누리꾼들이 악플을 남겼지만, 임씨가 남성인 데다 팬덤인 '영웅시대'까지 나서면서 논란이 잦아들었고요. '드릉드릉'이 정말 남성에 대한 모욕이나 조롱의 의도를 담은 말이라면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된 혐오 표현이기에, 여성 연예인이 쓰면 '남성혐오자'가 되고, 팬층이 두터운 남성 연예인이 쓰면 '그러려니'가 되는 것이겠죠.

'집게손가락'이라는 허구의 혐오
 

논란이 된 르노코리아 영상의 한 부분 ⓒ 르노코리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훈님도 아시겠지만 '드릉드릉', '오조오억' 등과 더불어서 또 하나의 '혐오 없는 혐오 표현'이 된 것이 '집게 손'입니다. 이는 2015년 메갈리아 사이트의 로고가 남성의 작은 성기를 상징하는 집게 손 모양이었던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메갈리아는 여성혐오적 언행이 주를 이루던 일베(일간베스트)를 '미러링'(말이나 행동을 반대로 뒤집어 보여주는 것)하는 측면이 있던 사이트였으므로, 남성을 조롱하는 이와 같은 로고를 사용한 것인데요. 메갈리아가 폐쇄(2016년 활동 중지)된 지 한참 지난 2021년에 GS25 포스터에 '남성혐오'를 의도하는 집게 손을 숨겨놓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집게 손은 갑자기 '혐오 표현'이 됩니다.

최근에는 르노코리아의 유튜브 채널인 '르노 인사이드'에 올린 신차 '뉴 르노 그랑 콜레올스' 홍보 영상에서, 여성 직원이 집게 손 모양의 동작을 한 것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남성 비하의 의도로 그러한 손 모양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들끓었던 것이죠. 

해당 직원은 "저는 특정 손 모양이 문제가 되는 혐오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제가 제작한 영상에서 표현한 손 모양이 그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라며 "직접 제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영상 콘텐츠의 특성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의도를 가지고 한다는 것은 저 스스로도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해명문은 '스스로 혐오표현인걸 시인했다'는 식으로 오독됐습니다. 해명문은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고, 르노코리아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해당 여성 직원에 대해 '직무 수행 금지 조치'를 단행했으며, 앞으로도 조사위원회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해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해고 요구 등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최근 볼보 코리아 사내 홍보물에도 여성의 '집게 손' 포즈가 있어서 논란이 됐는데, 이 사건의 진실은 역설적으로 집게 손이 얼마나 흔한 제스처인지 보여줍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 홍보물의 일러스트 출처는 이미지 판매 사이트 '셔터스톡'에 한 인도네시아 디자이너가 올린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그저 '걸면 걸린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볼보 코리아의 홍보물. 이미지 판매 사이트 셔터스톡에 있는 그림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포토월에 집게 손이 있어서 남성을 조롱한다는 주장에, 전쟁기념관 측이 사과하고 해당 이미지를 철거한 것도 비슷한 사례였습니다. 사실 포토월의 해당 부분은 메갈리아가 만들어지기도 전인 2013년에 설치된 것이었지요.

지난해 11월에는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의 리마스터 패치 홍보 영상에서도 집게 손 논란이 일어났는데, 정훈님도 기억하시죠?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과거에 페미니즘 지지 트윗을 쓴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고의로 '집게 손'을 넣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부분은 남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렸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는 실명과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되어 비난받는 등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에도 르노코리아 사건처럼 '이번 건은 다르다(고의적이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닷페이스>의 영상 '이 손가락이 그렇게 불편하세요'에 따르면 2021년 'GS25' 집게 손 논란 이후 무신사, 서울경찰청, 카카오뱅크, BBQ, 평택시, 스타벅스RTD 등 수많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홍보물에 집게 손 모양이 있었다는 이유로 모두 철회하고 사과했다고 합니다.

커뮤니티의 음모론적 주장과 이러한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일부 정치인, 그들의 주장을 검증 없이 기사화하는 언론이 일차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일단 '불쾌감을 드렸으니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공공기관과 회사 역시 해악이 큽니다. 그들의 주장을 사회적으로 승인하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조롱하기 위해 포스터나 영상 등에 집게 손을 넣고 있다는 음모론을 우리 사회가 '정당한 주장'인양 받아주면서, 졸지에 '혐오 없는 혐오표현'이 탄생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이로 인해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습니다.

'남성혐오'라는 음모론, 이젠 끊어내야 한다
 

지난 3월 6일 오전 10시께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사례 발표 및 공대위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김화빈

 
정훈님, 저는 드릉드릉과 집게 손에 대한 비난은 근본적으로 '페미니스트 사냥'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의 '남성혐오'를 근절해야 하므로 남초 커뮤니티가 규정한 '남혐 단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규탄하고 집게 손을 찾아내자는 움직임인 겁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실제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요. 하지만 집게 손이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혹은 남성을 모욕하고 비하하는 것입니다.

2015년 이후 온라인 페미니즘이 확산하면서,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나오는 공격적인 언행이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나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 의해, 극히 소수가 활동하고 있던 '워마드'가 페미니스트의 상징이자 대표인양 부각됩니다. 남자 일베=여자 워마드 공식이 성립되고, 나아가 일베=워마드=페미니스트라는 황당한 도식화가 이뤄집니다. 성차별과 가부장제의 폐해에 저항하고 여성가족부 존치를 외치는 페미니스트들을, 황당하게도 '남성을 공격하는', '반사회적인' 존재로 여기면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게 된 겁니다.

이런 왜곡된 인식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집게 손 모양을 몰래 사진이나 영상 속에 숨겨놓고 세상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으로 이어집니다. 마치 일베가 수많은 사진 속에 몰래 일베 마크를 숨겨놨듯 말이죠.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일베 유저들처럼 하나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애초에 그 로고를 페미니즘의 상징처럼 여긴 적도 없습니다. 

드릉드릉과 집게 손은 남성혐오가 아니라, 정반대로 여성들을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로 악용됩니다. 손 모양마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쓰도록 만드는 재갈과도 같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마녀사냥을 멈추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을 우리 사회가 헛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연예기획사 안테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뜬뜬'의 웹 예능 '핑계고' 영상이 논란이 됐습니다. 게스트로 출연한 박보영씨가 '유모차'라고 말한 것을 자막에서 '유아차'로 썼기 때문입니다.

영상에 '싫어요'와 악플이 달렸고 '작가 중 페미를 색출하라'는 요구까지 빗발쳤지만, 안테나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논란은 곧 잠잠해졌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육아의 주체가 여성만은 아니므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대체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테나 측에선 부당한 공격을 받아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남성혐오'라는 음모론을 내세우면서 사이버테러와 불매를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계속 끌려다닐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무시할 것인가. 정훈님, 이 지독한 마녀사냥을 끊어내기 위해서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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