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가 2020년 7월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수지(가명)씨는 충북에 있는 A병원 구내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일했습니다. 수지씨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병원을 비롯해 여러 사업체의 위탁급식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과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수지씨가 일하는 A병원 구내식당 관리자의 직장갑질이 심각했습니다. 신고식이라는 이름으로 회식비를 강요했고, 화장품을 강제로 사게 했습니다. 관리자의 말을 잘 듣는 직원에게는 시간외근무를 몰아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수당을 적게 받도록 업무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수지씨와 동료들은 본사를 찾아가 관리자의 부당한 행위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회사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관리자는 수지씨를 불러 "벼락 맞아라", "차에 깔려서 박살나라", "눈알들이 다 빠져라" 등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막말과 성희롱 발언까지 했습니다. 관리자는 그녀에게 사직서를 쓰라고 협박했습니다.
관리자의 충격적인 폭언을 들은 수지씨는 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관리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녀가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했습니다.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조직 관리에 미흡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에게 서면 경고를 하고 끝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편 수지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회사는 그녀에게 복직명령을 내리고 B회사의 구내식당으로 발령 냈습니다. 해고 기간은 무급휴직으로 처리했습니다.
B회사는 거리가 멀고 외진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가족을 간병하고 있어서 먼 곳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녀와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령 냈습니다.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를 인정받았습니다.
수지씨는 이 모든 과정이 황당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근로기준법에 ① 지체 없이 조사 ② 유급휴가 등 피해자 보호 ③ 가해자 징계 등의 조사·조치의무가 있는데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신고를 했다고 1차에서 해고, 2차에서 전보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⑥항에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노동청에 회사 대표이사를 관련 법 위반으로 신고했습니다.
노동청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대표이사에게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습니다. 대표이사는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대표이사는 B회사의 시설과 근로조건이 A병원보다 낫기 때문에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4월 청주지법은 대표이사에 대해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회사는 유급휴가 조치 등을 취함이 상당함에도 오히려 해고라는 피해 근로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조치를 취하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법원은 "이 사건과 같이 부실한 사실 확인 조사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 사후 조치가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인지 판단함에 있어 피해 근로자의 주관적 의사를 마땅히 고려함이 타당하다"며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피해 근로자의 주관적 의사가 완전히 배제되고 오히려 인력 부족이라는 피고인 회사의 사정이 고려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취한 개개의 조치를 살펴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이른바 피고인의 경영마인드라는 것이 현행 규범에 못 미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근로자를 대상화하고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라며 "피고인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식은 언제든지 또 다른 가해자를 용인하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방치할 것"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신고 이유로 '보복 갑질' 횡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