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그린 '진격의 송전탑'
박준호
'해봤자 안 되더라.' '국가와 싸워서 어찌 이기나.'밀양 주민들이 10년 동안 한국전력과 싸울 때마다 주변에서 들어야 했던 잔소리, 그 충고의 언어란 결국 이런 패배의 수사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괴로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국가 권력을 향한 수많은 투쟁들은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궤적을 그려왔습니다. 밀양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많은 싸움이 그러했듯이 조금씩 썰물로 빠져나간 황량한 갯벌처럼 밀양 송전탑 현장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자존감만이 남아 하루하루 버티며 지내는 날들입니다.
그래서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에서는 밀양지역 7개 마을에 사랑방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아직 한국전력의 보상금을 받지 않고 버티는 주민들의 터전으로 삼아 함께 밥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연대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또 매주 한 번씩 모두 만나 같이 밥 먹고 노래를 부르고 영화도 보고 사는 이야기도 하는 문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도시의 연대자들에게 손수 지은 농산물을 팔기도 하고요. 작은 푼돈이나마 뿌듯하게 쥐어드리며 아직 식지 않은 밀양을 향한 연대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6·11 행정대집행 이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는 철탑을 바라보며 심란하고 괴로운 마음들을 함께 견뎌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늘 승리와 패배의 기준에 대해 물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패배한 것인가. 어르신들은 마이크만 손에 잡으면 혹은 발언의 자리에 설 기획만 생기면 거의 입을 맞춘 듯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간다." "우리는 저 철탑 뽑아낼 때까지 싸울 거다."승리와 패배, 승리란 무엇이고 패배란 무엇일까요? 송전탑이 건설되느냐, 마느냐를 두고 승리와 패배를 규정한다면 그 싸움은 애초부터 너무나 뻔한 결과를 예정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루 수천명이 동원된 젊은 경찰 병력들과 합쳐봐야 200명이 채 안 될 노인들이 맞서 싸우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요?
연간 매출액 60조 원의 초대형 공기업과 그들의 편을 드는 보수 언론들에 맞서 아무리 울부짖고 외쳐본들 상대가 되나요? 승리와 패배를 그렇게 규정한다면 세상의 모든 싸움은 모두 가진자들의 승리일 뿐입니다. 질 게 뻔한 싸움에 나설 사람은 없습니다. 승리와 패배에 대한 판단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민들은 "끝까지 가겠다" 하십니다.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당신들이 입었던 피해와 고통에 대해 책임지길, 사죄받고 제자리로 되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정신 승리'가 아니라, '끝까지 가서, 누가 옳았는지'를 인증받고, 그 옮음을 따라 이 사태 이전의 자리로 되돌아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국의 많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 송전선로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지역과 연대하여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결성된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에서 전원개발촉진법을 비롯한 에너지 3대 악법 개정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밀양을 에너지자립마을로, 그 시작은 서울시 미니태양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