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로 형사고발"8월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와 15개 업체를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법검찰청에 살인죄로 형사고발했다.
정대희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해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올해부터 지원하고 있다. 가해기업은 아직까지 단 한 마디 사과가 없다. 정부도 사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도 미궁이다.
그러나 피해자들 생각은 다르다. 정부도 책임이 있고, 가해기업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기업이 돈벌이를 했으니까. 정부의 규제 완화, 관리 공백의 흔적이 목격되니까. 하기에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도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이며, 그 사건의 대응과 처리 과정이 세월호와 닮았다고 하는 것이다.
의료비 지원 나선 정부...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해결됐을까?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고통을 감내하고 견디고 있다. 처음에는 원인도 몰랐다. 의사도 몰랐고, 환자도, 보호자도 몰랐다.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대다수가 '원인미상 간질성 폐질환'이었다. 속수무책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만큼 무서운 질환이기도 하다. 이 제품이 처음 제조된 것은 1994년이다. 많게는 800만 명이 사용했다는 보고다.
사람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는 유형은 다양하다. 노출 정도 등 사용환경에 따라 끼치는 영향도 다 다르다. 사용자의 면역체계에 따른 반응도 다르다. 주로 약자인 유아나 임산부, 노약자의 피해가 컸다. 가습기에 넣은 살균제 성분이 분무되면서 미세입자가 폐포 세기관지에 이르러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급성호흡곤란으로 인한 사망, 폐 섬유화 피해가 이 질환의 결과들이다.
생존했어도 폐를 사용할 수 없어 이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관련기사 :
가습기살균제 때문에...온몸이 이렇게 망가졌어요). 사망자는 말할 것도 없고, 중증 폐질환을 앓아야 하는 환자 본인의 고통 그리고 가족들이 겪어야 할 피해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혹은 사랑하는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은 이들의 또 다른 트라우마이다.
피해자와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속사정을 거론하는 것은 생략하자. 고맙게도 이미 몇몇 언론에서 이들의 절실하고 절절한 상황이 보도된 바 있다. 세월은 망각을 낳는다. 피해 참상이 드러나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대중들은 관심을 거둔다. 불편한 진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 심리는 해당 사안이 쉽게 해결됐을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11년을 전후로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다뤄져 왔다. 대중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 문제를 지켜봤다. 그리고 원인 물질이 '가습기살균제'임이 밝혀지고, 정부의 의료비 지원 소식이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된 것으로 간주해 버렸다. 진짜 그럴까?
앞서 언급한대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규명은 지금까지 없다. 따라서 처벌도 없다. 정부의 의료비 지원은 또 어떤가. 정부는 올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의료비 본 예산으로 108억 원을 세웠다. 이 중 5분의 1정도만 집행하고, 나머지는 불용처리해 반납될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당연히 분노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질병관리본부 등에 접수된 피해자 규모는 600~700명에 이른다. 지난 3월에 1차 심사때 361명이 피해자로 접수했다.
정부는 접수된 피해자들을 네 개 등급으로 나눠 1, 2등급 대상자 168명에 대해서만 의료비를 지원했다. 나머지 3, 4등급은 제외됐다(지난 3월 1차로 판정받은 4단계는 '①가능성 확실 ②가능성 높음 ③가능성 희박④가능성 없음'이다). 정부는 당초 예산 추계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해자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줄었다는 것이다. 내년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의료비 예산도 25억 원 이내로 책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피해자가 줄어든 게 아니다. 정부의 지급기준 범위 내에 들어가는 피해자 규모가 줄어든 것뿐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정부의 피해판정 방식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3, 4등급에서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전문가들로 판정위를 구성해 임상적 판단과 사용 환경을 조사한 환경적 판단을 갖고서 판정했다.
이 중에서 결정적인 것은 '임상적' 판단이다. 즉, 의료 전문가들이 뚜렷한 양상으로 인정할 만하다는 임상적 소견을 일차적 판단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여러 사정으로 의료 자료를 제출할 수 없는 이들은 판정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제출했다 하더라도 소견이 뚜렷하지 않으면 제외되었다.
의사의 '임상적' 판단으로 3, 4등급 피해자는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