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금기한다'지난 2010년 6월 29일 성노동자의 날을 맞아 일본에서 살해당한 한국인 성노동자 여성을 추모하며 진행되었던 <목소리 展> 중 관객 참여 퍼포먼스 '금기를 금기한다'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평범한 사람들, 특히 '(직업으로서 성노동을 하지 않는) 평범한 여성의 죽음', 그리고 '성노동자의 죽음'을 사람들이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두 죽음이 얼마나 이분법적이고 서로에게 배타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생각해 보라. 대개 전자의 죽음은 사회의 공분을 자극하고, 이 공분 안팎으로는 '여권 향상'과 '여성 보호'의 문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짜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지에 대한 소란스러운 담화와 각계각층의 입장들이 전개된다.
하지만 성노동자의 죽음은 어떠한가? 우리는 어째서 질문조차 않은 채 '몸 파는 일을 했으니 죽을 만도 하다'며 그녀들의 죽음을 수긍하는가?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부도덕하고 문란한 여성에 대한 단죄'라며 그녀들의 죽음을 긍정하고 각자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생각은 과연 소수만의 것인가? 성노동자는 여성이 아닌가?
성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다. 사람들은 여타의 죽음보다 성노동자의 죽음에 유난히 무딘 경향이 있다. 성노동자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열악한 상황과 상시적인 폭력과 살해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인과의 알고리즘에 묶일 수밖에 없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연결점에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하다. 각종 미디어에선 '극단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가련하고 비극적인 여성'으로서의 성노동자의 이미지를 매번 선정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지만, 성노동자의 열악한 상황과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제기하는 이들은 터무니없이 적다.
그녀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째서 이 상황이 왜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는 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따라서 그녀들의 죽음을 '여성살해', 그 중에서도 특히 '성노동자 살해'로 범주화한 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노동자 살해의 범주화어째서 성노동자들이 자꾸만 살해당하는지, 그 인과를 명확히 규명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대부분의 성노동자 살해 사건은 가해자의 구체적인 살해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보도된다. 사회의 공분을 자극하지 않는 폭력일수록 본질은 잊혀지고 사건은 호도된다.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유지재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폭로는 발화되는 순간 목소리를 잃는다.
죽음은 존재하나 죽음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백히 존재하는 죽음의 이유에 태연히 덧씌워진 공백이야말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녀들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성노동자의 현실을 정확히 시사하고 있다. 괄호 안으로 이유가 갇히고 은폐된 죽음들은 시야의 바깥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이 공백을 걷어내고 그녀들의 죽음을 직시할 책임이 있다.
성노동자 살해는 여성살해의 맥락과 더불어, 성매매 안팎을 구성하는 특정한 지형에 의해서, 성매매 과정에서 자행되는 여러 폭력에 의해서, 심지어는 단지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낙인과 혐오에 의해 성노동자가 살해당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이른다. 더불어 성산업 내의 열악하고 착취적인 노동조건에 의한 성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사회적 낙인감, 정서적 어려움, 지속적인 폭력, 고리 대금 등의 여러 요인으로 인한 성노동자의 자살 역시 성노동자 살해의 범주에 포함된다. 대표적 사례로 2000년의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 2010년의 경북 포항 성노동자들의 연쇄적 자살 사건을 들 수 있다.
약자 개개인에게 자행되는 사회적 폭력은 무지로 인해 발생한다. 많은 경우 이 무지는 생래적이고 필연적인 사회의 풍토병인 양 여겨지나, 사실은 미처 셀 수 없을 만큼의 촘촘한 맥락과 인과로써 철저하게, 매우 의도적으로 '수행'된다. 이 수행은 중심과 바깥을 겹겹이 구획짓고 분열시킨다. 그리고 중심을 견디지 못하거나 중심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저변으로 밀어낸다. 이것이 사회적 소수자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죽음을 의제화하는 과정에선 이 방식을 짚어내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성노동자 살해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성노동자들이 성매매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 그리고 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편견과 낙인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성노동자 살해 사건에서 매번 잘려나가는 인과의 연결고리를 재구성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성노동자 살해의 현황과 폭력의 문제
언론 보도 성노동자 살해사건 |
2004.9 : 서울 강북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 살해 시도가 미수에 그침 2005.6 : 서울 종로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6.4.7 : 서울 종로구 낙원동 한 여관에서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8.11 : 서울에서 아버지에 의해 2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9.7.10 : 서울 서초동 오피스텔 업장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20대 성노동자 여성 살해 시도가 미수에 그침 2009.8 : 제주시 연동 한 원룸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9.12 : 대전 유천동 원룸에서 업주와 마담의 감금 및 구타에 의해 2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9.12.4 : 태백시 황지동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5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0.2 : 부산 진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0.4 : 전남 여수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된 채 암매장됨 2010.7.30 : 서울 청량리집결지 한 업소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0.12.11 : 전주시 덕진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1.10 :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1.11.2 : 부산 해운대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2.7.4 : 의정부시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3.3.17 : 화성시 향남읍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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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여년간 언론에 보도된 성노동자 살해 사건들이다. 옆의 자료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발간한 2011년 하반기 <여성과 인권>에 실린 도표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성노동자들은 여러 조건으로 인해 폭력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선 성노동자들은 성매매 행위자라는 '불법적 위치'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성매매의 과정에서 업주나 구매자로부터 신고 협박, 금품 갈취, 성폭력, 구타, 살해 위협 등의 폭력을 당해도 성노동자들은 단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찰에 위험을 호소하지 못한다.
성매매의 불법화, 성노동자 처벌은 성노동자들의 당장의 삶을 실질적으로 열악하게 한다. 단속은 수시로 이루어지고, 단속 과정에서 여러 언어적, 신체적 폭력들이 자행되기도 한다. 단속에 적발되면 전과가 기록되고, 벌금을 물거나 심하게는 징역을 살기까지 한다.
또한 성매매와 성노동을 향한 사회의 깊은 낙인으로 인해 성노동자들이 겪는 친밀한 관계의 단절, 지속적인 자존감 하락의 문제, 단속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상시적인 불안 등의 문제도 성노동자들이 겪는 폭력의 문제에 포괄된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과 낙인의 결합으로 인해 폭력은 성산업의 현장에서 만성화되며, 바로 이 폭력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지점에서 성노동자들은 살해당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언론보도를 추린 자료에서 알 수 있는 사례는 극히 한정적이므로, 미처 알려지지 못한 죽음들은 보도된 죽음의 횟수를 훨씬 상회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노동자들은 구매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매자에게 짜증을 냈다는 이유로, 구매자가 단속을 두려워해서, 페이를 지급하고 싶지 않아서, 콘돔을 빼고 섹스하자는 구매자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심지어는 성노동을 그만두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성노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애인이나 가족으로부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드물게는 자신의 배우자와 성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같은 여성으로부터 살해당한다.
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