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 블랙잭
혜원
학교 안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삶인 것 같다. 그럼에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스스로가 바라는 학교의 모습, 학교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그 얘기를 듣고 싶었다.
"학교는 굉장히 폭력적인 공간이에요. 약자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늘 그런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 되다보니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을 때도 많아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와 같은 폭력을 당하는 친구들이 분명 더 있겠죠?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당장 부모님과의 갈등도 두렵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내가 발 딛고 선 이 공간에 대한 변화를 꿈꾸기 때문이고, 행동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내가 하나의 사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여기 이렇게 상처받고 차별받는 누군가가 있다고. 여기 남들과는 좀 다른 내가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큰 거죠. 나는 학교를 그들과 내가 살만한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싶어요. 더 열심히 노력할 거고, 더 부단히 움직이려고 해요.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학교가 변하지 않으면 사회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아 그리고, 학교를 떠나지 않는 이유 중에 학교 내에서 연애를 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어요. 이건 제 꿈이에요.(웃음) 그러니까 저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더욱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외치고 싶어요. 적어도 저 같은 사람이 연애를 하고 싶을 때, 당당하게 연애할 수 있는 그런 토반을 다져놓고 싶어요. 뭐 애인을 만드는 건 제 노력이지만요.(웃음)"마치며우리는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준희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브라운관 밖에서, 스크린 밖에서 존재하는 준희의 삶도 과연 드라마처럼 아름답기만 하냐고 말이다. 그러자 2012년의 준희는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그는 스스로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뼈아픈 증거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학교 현장이,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놓쳐버린 많은 것들에 대한 절박함이기도 했다. 준희는 온 몸으로, 그의 삶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고. 이제는 우리가 준희에게 대답을 해야 할 차례다. 우리 모두가 길을 묻고, 길을 찾아가야만 한다고.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만 한다고.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 한다'는 본연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렇다고 멈춰서 있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해 수천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학교는 수천 명의 학생들을 버리고 만다. 연일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터져 나온다. 학교가 아프다는 외침이다. 학생들이 죽을 만큼 아프다는 비명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이 아픈 현실에 대한 유일한 해답일 리는 없다. 다만, 시작임은 분명하다.
2년을 달려왔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은 더 먼 학생인권조례다. 학교가 학생들이 행복한 공간이 되기까지,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공간이 되기까지, 더 이상 죽는 공간이 아닌 '살아가는' 공간이 되기까지 가야할 가시밭길은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때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으로 숨겨져 온 모든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전혜원 기자는 다산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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