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 PD수첩 > 김은희 작가
남소연
후아-
먼저 심호흡부터 하고 시작해야겠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탁탁 막히는 나날입니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은 적도 처음입니다.
통화를 하고 있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전화와 문자가 들어오는 경험을 하며
처음엔 그저 어리둥절했고, 나중엔 신기했습니다.
내게 현실을 실감하게 해준 것은 바로 그런 전화와 문자들이었습니다.
'부엉이 바위는 꿈도 꾸지 마'라는 문자도 있더군요.
'딴 생각 못하시게 옆에서 잘 감시하래요.' 후배작가가 말했습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낼 수 있지? 은희야. 그럴 수 있지?'
속상해 술을 마시고 들어온 선배언니가 내 손을 붙잡고 몇 번씩 같은 말을 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과거가 될 거예요. 견디고 버티세요.' 지인이 메일을 보내주었습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두 개의 문장이었습니다.
'밥은 꼭 챙겨먹어. 잠은 꼭 자고.'
'기사도 댓글도 절대 보지 마라.'
외면하려 애쓰지만 잘 안 되는 경우들이 있지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뺐기는 경우가 그렇듯.
내 손끝이 만들어낸 사소한 문장들이
악의와 음모를 가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나를 찌르는 섬뜩한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람 하나 짓밟는 것쯤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이들을 보며
'살의'라는 단어 이외의 표현은 생각나지 않더군요.
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 이제 나는 믿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어쩌다.
가족들이 걱정할 만큼 일밖에 모르고
일이 끝나면 사랑하는 조카들과 노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아는,
그저 말보다 글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상념을 글로 남기는 것을 지친 일상의 위안으로 삼아온
30대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이
어쩌다 졸지에 국가 전복의 음모를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한
대단한 반정부적 인사로 낙인찍혔을까요.
어쩌다 촛불집회 군중들 뒤에서 음흉하게 키득거리는 마녀가 되었을까요.
부엉이 바위로 보내고 국민장을 치러야 한다는 저주를 받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치욕과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치유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남기기 마련이지요.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이라면, 저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낸 밤, 나는 이런저런 상념을 글로 쓰거나
주변사람들에게 써 보내며 마음을 추스르곤 했습니다.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일들과 살면서 겪게 되는 불만들과 만난 사람들과 훌쩍 떠난 여행기와 허무맹랑한 공상과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파지 할머니를 두고 몇 장의 글을 썼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한 곡, 빗소리, 신문기사 하나로도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 많은 글들 중엔 남들이 봐서는 안 되는 사생활도 들어있었습니다.
누구나 상념이라는 것이 있지요.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며 공적인 언어만을 써야 하는 방송작가이기에
할 수 없는 말, 쓸 수 없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개인 김은희가, 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쓴,
단 한 사람에게만 읽도록 허락한 글들이었습니다.
상대와 나의 말투, 글투, 성격, 관계가 녹아있는 글들이었고
농담도 과장도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내가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지인들에게 보낸 개인 서신들이었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장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검찰이 강제로 헤집고 들여다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것을 '작가 김은희'의 글로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것도 수많은 메일 중, 수 천 수 만 개의 문장 중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문장들만 짜깁기해서 말이지요.
개인적인 상념이 대중들에게 공개된 순간,
그것은 설명하고 해명해야 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