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대지 위의 땅도로공사중 드러난 김녕리 일대의 땅. 용암이 흐르면서 굳은 암반이 엷은 흙층 아래 있다.
고평열
바닷물 아래에 쌓인 흰 모래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에머랄드 빛깔과 검은 색의 현무암이 만들어 내는 색의 조화, 잘 달구어진 편평한 현무암은 선흘곶자왈을 이룬 파호이호이 용암류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암반이다. 가운데 보이는 벌어진 틈은 압축된 가스가 새어나오면서 용암 표층이 갈라져 생긴 현상으로 프레셔리찌라고 한다.
이곳에서 용암의 흐른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가 되는 새끼줄 구조가 관찰되며, 나무가 자라지 않아 원형 그대로 나타나는 튜물러스 현상이 또한 관찰되는 지역이다. 곶자왈에서는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곳에 오면 왜 잔인한(파호이호이) 용암이라 했는지, 한국명으로 빌레 용암이라 한 이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암반 위에 식물이 나고 자라고 암반이 풍화되어져 여북하나마 흙이 만들어져 농사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의 흐름이 여기에 머물렀을까.
용암은 바다 저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굳어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해안선은 약 6000년 전에 이루어 졌다고 하고, 이 용암이 흘렀던 시기는 그 보다 아주 아주 오랜 옛날인 40~60만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서해안과 제주도가 중국의 본토와 연결되어 있던 빙하기 저 이전의 이야기를 우리는 여기서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녕리 빌레 앞바다에 두럭산이라는 산이 있다. 제주도의 한라산과 368개라고 하는 오름 중에 ‘오름’이라는 이명을 가지지 않은 산이 5개 있다. 제주도의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한라산이 그 첫째이고, 서쪽으로 가면 산방산, 동쪽 해가 뜨는 성산 혹은 청산 (일출봉은 마을이름과 구분하기 위해 붙었다고 한다.), 납읍리의 수호산인 영주산과 그리고 마지막 한 곳이 김녕리 앞바다에 있는 이 자그마한 돌산인 두럭산이 있다. 다른 산들은 산으로 칭송되어지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유독 두럭산은 얼핏 보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럭산은 그 크기의 웅장함 보다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신앙의 크기에 그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물질을 하던 해녀가 두럭산에 앉아 쉬려고 하면 큰 파도가 덮치곤 하였다. 두럭산 일대의 해산물을 채취할라치면 어김없이 사고가 생기곤 했다 한다. 두럭산에 깃든 신령님을 노하게 결과라고 생각하여 해마다 영등제를 지내고 어로작업을 다니는 배들도 두럭산 근처는 피하여 오고 갔다. 두럭산은 김녕리 일대의 마을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신이나 신화라고만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있다. 썰물이 되어서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가 근처의 암초가 두럭산이다. 밀물인 경우는 물속에 숨어있는 복병이 되어 배가 난파하기도 했을 테고, 물 깊은 곳에 자리한 암초 때문에 조류는 바위를 돌아 흐르며 빠른 물살을 만들어서 해녀들의 어로작업에 위해가 되었을 수가 있을 것이다. 조심하라는 말 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유혹이 두럭산 인근에 풍부한 해산물이 있었다고 하니, 신화를 빙자해서 사람들의 안전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결국 산이 못 되면서 산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구하고픈 절실한 그 마음의 크기 때문이 아니었을 까 한다. 김녕리 마을 안, 일주도로 공사를 하며 드러난 땅이다. 이 한 컷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처음 본 순간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흘곶자왈을 보았고, 김녕 덩개 해안을 이미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