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국민대 교수회 온라인 총회 모습.
홍성걸 제공
나는 반대표(反對表)의 집단지성이 '그들만의 셈법'으로 '또 다른 시스템 악행'을 저질렀다고 본다. 반대표를 던진 교수들은 표절을 '우리 모두'가 함께 물리쳐야 할 '악행'이 아닌,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바꿔가야 할 '악습'으로 뿌리를 내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이라 불리는 '컬렉티브 인텔리전스(Collective Intelligence)'는 벌이나 개미, 새나 물고기 등의 활동 방식에서 보이는 '떼 지능(Swarm Intelligence)'을 일컫는 말이었다. 비록 이 말이 오늘날 위키피디아와 같은, 컴퓨터 이용자 간의 상호 협동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을 뜻하기는 하지만, 여기에 쓰인 '인텔리전스'라는 영어 낱말은 '지성(知性)'이 아닌 '지능(知能)'으로 옮겨지는 게 맞다.
지성은 지능과 다른 말이다. 지능이 '주어진 물음에 대해 올바른 답을 할 줄 아는 힘'을 뜻한다면, 지성은 지능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낱낱이 살펴 전체를 두루 헤아려 볼 줄 아는 힘이다.
반대표의 집단지능은 위키피디아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집단지성은 표절의 악행을 악습 정도로 되돌리는 퇴행성을 보였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은 그것이 한 명의 뛰어난 사람의 판단보다 결과적으로 더 나을 때 쓰이는 말이다. 그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부터 돌아보려 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집단지능으로 불려야 맞을 듯하다.
표절 불가피론은 '부초 같은 논리'
검증위 구성 반대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이 어느 쪽인지를 잘 가릴 줄 안다는 점에서 지능적이었지만, 그들의 결론이 한국 학계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두루 헤아려 볼 줄은 몰랐다는 점에서 지성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계산의 손놀림은 재빨랐지만, 지혜의 더듬이는 무뎌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신평 변호사의 '표절 불가피론'을 옹호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적당한 표절은 인용으로 볼 수 있다'는 '둥근 네모' 같은 주장을 했다. 신 변호사는 '다른 사람들의 논문이나 글을 표절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때 그가 말한 '표절'은 그 맥락상 '출처를 밝히고 따오는 인용'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인용과 표절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무지 논변'을 펼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 뒤부터 '표절'을 '개인의 권리 침해'로 엄히 금지해 왔고, 한국은 2000년부터 이미 표절을 금하는 '연구윤리'를 마련해 왔다. 이는 교육부 훈령으로 엄히 금하는 '불법 행위'이기도 하며, 저작권법에 의해 '법적 처벌'까지 가능한 범죄인 것이다. 학계에서 다른 사람의 논문을 '출처를 밝혀 따오는 일'(인용)은 본디의 글쓰는 사람에게 명예를 돌리는 도덕적 행위(예우)가 되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몰래 따오는 일'(표절)은 남의 것을 훔쳐 제것으로 삼는 도둑질로 금기시되고 있다.
신평 변호사가 '표절을 저지르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라고 주장한 것은 '무지 논변'을 넘어 표절이 악행이 아니라는 궤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표절이 도둑질인 한, 그의 주장은 도둑질이 악행이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궤변은 상대를 '헐뜯는 말하기'로서 피장파장의 오류에 근거한 논증을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표절을 저질렀으니 김 여사의 표절도 문제를 삼을 수 없다는 '엉뚱한 논리'를 폈다. 이 논리가 비록 현실을 반영한 것이자 힘의 우위를 자랑하는 논리이기는 하지만, 그 논리는 현실이 뒤바뀌는 순간 궤멸되고 말 '부초 같은 논리'다.
정의를 허물었다
말은 권력(權力)이라는 중력(重力)에 이끌려 휘어지고
생각은 집단적 이익(利益) 앞에서 구부러지며
판단력은 공정(公正)이라는 시대정신에서 한참 뒤떨어졌도다.
권력은 '부릴 힘'이니 검증위 반대자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무릎을 꿇은 것과 같고, 이익은 '제 몫부터 챙기는 것'을 말하니 그들은 순자가 말하는 편험패란(偏險悖亂, 거대한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공정은 '나눔의 바름'으로서 모두의 이익과 책임과 의무를 이중잣대가 아닌 올바른 잣대로써 고루 두루 나눠야 한다는 것이니 그들은 '제 손 안의 잣대'로 자신들의 몫부터 챙긴 것이다.
검증위 반대자는 '절차의 공정'은 지켰지만 '결과의 정의'는 그르쳤다. 정의는 '바름을 지켜 나가는 일'이고, 바름은 기울어지거나 비뚤어지지 않게 꼿꼿하게 세워져 있음을 뜻한다. 바름이 무너지면, 집은 흔들리고 부서져 내리게 마련이다.
검증위 반대자들은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정당화했다. 그들의 부정의는 학문의 정신 가운데 진리 추구의 의무를 그르친 것이다. 논문은 주어진 물음에 대한 자신의 대답(주장)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쓰기다. 학자는 스스로 알아낸 바의 체계를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이러한 앎의 체계는 끊임없는 검증 과정을 거쳐 우리 삶에 받아들여져 세계를 거듭 발전시켜 왔다. 학자는 제안된 수많은 앎들에 대한 집단적 검증을 직접 수행할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참인 앎들'을 교육 시스템을 통해 가르친다. 그들은 이 과정의 순수성을 더렵혔다.
국민대 교수회가 내린 검증 반대 결론은 대학에서 공정한 절차로써 정의가 외면 당한 하나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사법 살인과 다를 바 없고, 민주주의 껍데기를 두른 채 시스템 악행을 다시 두둔한 양두구육의 작태와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