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청춘시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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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네이버 카페에서 같이 살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찾아가 보았다. 나보다 어린 여성이 홍대를 다니며 근처 투룸인 집을 구했는데 방 1개에서 각자 지내며 거실, 화장실, 부엌 등을 공유하는 개념인 '셰어하우스'를 제안했다. 그날 '하우스 메이트'를 알게 됐다. 첫날부터 그 여성과 대화가 잘 되었던 나는 그 집에 바로 들어가게 됐다.
한국에 와서 거의 원룸 생활만 하다가 그렇게 그 동생과 1년 정도를 지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재개발로 비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그냥 주인의 말만 듣고 나와야 했다. 정든 집이라 아쉬웠지만 나보다 동생이 더 섭섭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창고 같은 곳이 하나 더 있었는데 미술을 하던 동생이 혼자 힘으로 벽지와 바닥을 새로 다 바꾸고 가구도 들여놔서 처음 모습은 하나도 생각 안 나게 꾸몄었다.
이후 동생은 그림 작업을 그곳에서 하기도 했고, 나와 같이 가끔 영화를 보기도 했다. 고흐의 방처럼 온통 밝은 노란색이었다. 그렇게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한테 통보를 받은 것이다. 진작 알았다면 동생이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텐데. 언젠가는 나가게 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올 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또 다른 집을 알아봐야 했고, 다시 네이버 카페를 통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우스메이트에게 고소당하기까지
동생과 지냈던 기억이 좋아서 하우스메이트가 있는 집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한 집은 하우스 메이트를 구하는 건 아니었고 방이 3개인 월셋집이었다. 규모가 크니 월세금도 컸기에 내가 갈 곳으로는 무리지만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탁 트인 거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원룸 투룸만 보다가 스리룸의 거실을 보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는 살기 힘들지만 내가 하우스 메이트를 구해서 살면 어떨까? 엄마는 하우스 메이트를 못 구해서 네가 방세를 혼자 내야 하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할래, 라고 말했다. 그때 심정은 도박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금방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좀 있었다. 위치도 괜찮았고, 방 3개 모두 큰 편이었다. 그렇게 난 원룸 투룸을 거쳐 스리룸 집에 입성했다. 그전에 같이 살던 동생은 프랑스로 떠났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하우스 메이트를 금방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하우스 메이트들과 지냈는데 나는 딱히 계약서에 기간 명시를 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서로 사정이 생길 수도 있기에 나가기 한 달 전에만 알려주면 나도 그사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다 보니 방 1개에 사는 사람은 좀 오래 살고, 다른 방 1개는 좀 유동적인 편이었는데, 결국 살다보니 사단이 생겼다.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용산경찰서입니다." 나는 피식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심상치가 않았다. 약 한 달 전에 집에서 나간
하메(하우스메이트)가 나를 '주거침입'으로 고소한 것이다. 반년 정도를 같이 살며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 막내라고 챙겨줬는데, 나갈 때 보증금 문제로 나를 좀 미워했다.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복수를 한 것이었다. 옷을 그 친구 방에 넣어준 걸 갖고 말이다. 우린 그 전에도 택배니 뭐니 서로의 방에 자주 왕래를 하였다. 나는 당연히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태가 꽤 심각했다.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던)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나는 어차피 아무런 죄가 없으니까 별 이상 없겠지 하고 경찰서에 갔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내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어떻게 거실과 부엌, 화장실을 공유하는 집에서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간 것이 주거침입이 될 수 있는 걸까? 형사에게 집 구조나 고소한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방을 따로 쓰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갔다는 자체를 침입으로 보았다.
"보통 이 정도는 사건 접수가 안 된다고 말을 하고 아예 안 받을 수도 있는데, 이번 경우는 그쪽에서 신문고에 글을 올렸어요. 조사를 안 할 수가 없게끔"이란 말을 전했다. 이후 검사도 그때 형사와 비슷한 입장으로 공유하는 공간 외에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침입으로 간주했다.
나는 집 전체 사진을 일일이 찍어 직접 검사를 찾아가 설명했고, 다른 하메를 증인으로 그동안 각자의 방에 왕래하면서 있던 상태였음을 설명하고 나자 검사는 셰어하우스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민달팽이유니온의 협조를 받아 왜 침입 성사가 되지 않는지 탄원서를 작성하고 다른 옆방 룸메이트에게도 증인으로서 진술서를 받아서 무죄를 받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꽤 지난했다. 그때 느낀 건 앞으로 셰어 개념은 특히 서울에서는 집값이 왕창 내려지지 않는 이상 계속 늘어날 텐데, 법은 너무 늦어서 그사이에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 하메를 통해서 또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길까봐 무고죄로 고소를 했다. 그러나 검사는 피곤했는지 같이 무혐의를 내렸다.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공동체라는 것도 알게 되고 공동체 탐방기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관심이 많았다. 이후 더 많은 생각을 했다. 셰어하우스는 금액적인 부분을 나누는 것 외에 더 많은 것들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관련 자료를 좀 찾아보니 셰어하우스는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의 사건을 겪는 이들도 많을 텐데 좀 더 많은 논의의 장이 열리고 법과 제도도 거기에 발맞춰 변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간 10여 년간 이상 서울살이를 하며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앞으로 서울살이를 하는 청년들이 나보다는 좀 더 나은 길을 걷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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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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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트가 나를 주거침입죄로 고소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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