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임오경(광명갑) 당선자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남소연
- 영화 '우생순'이 크게 성공을 거둔 2008년 이후 여야 정치권의 오랜 구애를 받아왔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영향이 컸다. 정유라의 승마 부정 문제 때문에 체육계 전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됐다. 전 종목의 연맹체가 감사를 받았고 핸드볼 같은 비인기 종목까지 정부 지원 예산이 삭감됐다. 혼란스러웠고 수치스러웠다. 잘못한 건 정유라와 승마협회였는데 잘해온 사람들도 같이 벌 받는 느낌이더라. 그런데도 체육계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정치권 쪽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
- 언제 결심을 했나.
"정말 진지하게 정계 입문을 생각한 건 지난해(2019년) 11월부터다. 당에서 제의가 계속 왔지만, 직접 정치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확실해지진 않았다. 그런데 한 분이 그러더라. 다른 사람들은 정치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데, 너는 왜 계속해서 주어지는 기회를 거부만 하냐고. 그렇게 계속 제의가 오는 데엔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한 달 넘게 더 고민하다가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2019년 11월이라고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수영스타인 최윤희 현 문체부 2차관과 함께 문체부 2차관직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본인이 고사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실인가.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내게 제안이 있었던 건 맞다.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동시에 제의가 있었던 셈인데, 당에서 좀 더 큰 일을 하자고 설득했다." (이후 최윤희 차관은 지난 2019년 12월 19일 문체부 2차관 자리에 올랐다.)
- 민주당뿐만 아니라 미래통합당 쪽에서도 영입 제안을 했다. 왜 민주당을 택했나.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거란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정치할 생각은 없었고 대선 때도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만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회사에서 시말서까지 썼다(웃음)."
- 시말서를 썼다?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으로 있을 때였는데 서울시청 소속이라 정치적 의사 표명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아니 감독은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 1년 계약직인데 민주주의에서 누굴 지지한다고 밝히는 게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 미래통합당 쪽에선 언제부터 제의가 있었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시기에 제안이 왔고, 멀리 보면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2008년부터다. 하지만 당시엔 석사·박사 공부를 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 무렵이어서 정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운동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공부 못한다'는 얘기였다. 편견을 깨고 싶어서 2011년에 석사, 2014년에 박사까지 마쳤다. 목표를 정하면 계획을 세우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 영입 제안은 누가 했나.
"민주당 쪽에선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최재성·도종환·박광온 의원 등 여러분이 설득해주셨다. 통합당 쪽에선 염동열 의원이 제안을 주셨다."
"학교체육 발전시킬 것... 스포츠 성폭력 처벌 강화 법안도 추진"
- 경기 광명갑에 전략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민주당 임오경 47.66% - 통합당 양주상 36.98%). 소감은.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땐 그때부터 쉴 수 있어서 좋았는데, 국회의원은 당선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 오히려 더 힘들더라. 책임감도 무겁고 걱정도 많이 된다. 오히려 유세 다니면서 유권자들과 만나던 선거 운동 기간이 행복했다는 생각도 든다."
- 영입 당시에도 지역구 출마를 염두에 뒀나.
"전혀 아니었다. 당연히 비례대표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지역구에 전략 공천하겠다고 해서 처음엔 그럴 거면 정치 안 하겠다고 했다.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스포츠 스타로 알려져 있는데 갑자기 정치 하겠다고 내 이름 걸고 표 달라고 나서면 국민들에게 손가락질부터 받을 것 같았다. 당에선 믿고 따라와 달라고 설득했고, 나중엔 이미 하기로 한 거 물러서지 말자는 생각으로 수긍했다. 다행히 결과적으론 잘 됐다."
- 국회의원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나.
"학교체육을 발전시키고 싶다. 체육 분야는 크게 보면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전문체육 이렇게 세 축이 있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스포츠 교류가 있다. 전문체육인 출신이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된 만큼 국민들과 가장 밀접한 학교체육 발전에 힘 써야 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 학생들의 비만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만 늘어 척추측만증이 급증했다. 성인병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국가적 문제이기도 하다. 또 학교 폭력 등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체육수업을 늘리고 방과후 스포츠·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활체육과 전문체육도 함께 좋아지리라 본다. 학교체육에 투자하면 체육관·수영장 등 인프라도 늘릴 수 있고, 아이들이 이용하지 않는 새벽과 저녁 시간엔 일반 주민들을 위한 생활체육 공간으로 함께 쓸 수 있다. 전문체육인 양성 측면에서도 학교체육 커리큘럼 강화가 도움이 된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나 교육위원회에서 일하고 싶다.
또한, 여성들이 경력 단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가 그 고충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생순'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플래잉 감독 생활을 할 때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도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내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악착같이 버텼다. 출산 이틀 전까지 결승전 코트에 섰고 출산 뒤 일주일만 쉬고 다시 코트로 복귀했다. 훈련을 할 땐 아이를 바구니에 넣고 다니면서 키웠다. 덕분에 '영웅'이니 '전설'이니 호칭을 얻었지만 그 고통은 나 하나로 족하다. 대기업부터 직장 내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을 늘려나가야 한다.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심석희 선수의 폭로 등 스포츠 미투 운동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스포츠 내 성폭력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 과제다. 지난 1월 9일 성폭력을 저지른 체육 지도자들의 자격을 최대 20년간 박탈한다는 내용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긴 했지만, 보다 확실한 처벌 강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처벌 수준에 대해선 논의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성인지 교육 강화와 체육관 내 CCTV 설치 의무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CCTV 설치가 인권 침해라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심 선수 폭로가 말해주듯이 체육계 내엔 여전히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 훈련 현장이 범죄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CCTV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심하라는 신호가 될 수 있고, 어린 선수들 입장에서도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