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 작가
은성 작가
왜 경찰서를 가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경찰차에 탔다. 북한에서는 남자들끼리 싸우면 경찰이나 누가 와서 간섭하지 않는다. 그냥 뒷산에서 치고받고 정리가 된다. 경찰서로 가서 CCTV를 돌려보니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주먹을 쓴 것도 저들인데, 문제는 내가 들었던 운동기구가 흉기라고 했다.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결론이었고 합의를 해야 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여기서 지켜야 할 법과 규범, 그리고 행동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북에서는 출신배경, 남에서는 대학... 너무 화가 났다
한국 생활이 고될수록 북의 가족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하루빨리 돈을 벌어 어머니를 모셔오고 싶다. 작년에는 돈을 벌려고 안산에 있는 자동차 공장에 취직했다. 다행히 자동차를 다루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았다. 일이 손에 익어갈 무렵 팀장이 퇴사해서 팀장 자리에 공석이 생겼다. 주변에서 다들 저 자리는 '철이 너 말고 누가 할 수 있겠느냐'라며 바람을 넣었다. 욕심이 없었는데 계속 말을 듣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샌가 일이 능숙해져 공장 내에 내가 일을 잘한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내심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발표를 듣고 속이 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팀장으로 진급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늦게 들어온 동갑내기 후배였다. 실수도 많이 하고 입사도 늦게 한 친구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갖고 있던 것이 바로 대학 졸업장이다. 일을 잘하고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 일은 못 하는데 대학 졸업장이 있는 사람. 아니 일만 잘하면 되지, 졸업장이 그렇게 중요한가?
북에서는 출세하려면 출신 배경이 좋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학을 나와야 하는구나. 너무 화가 났고 그날부로 회사를 그만뒀다. 나도 대학 가고 만다.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고민 끝에 물리치료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나중에 통일되고 나서도 북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북에서는 사회복지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노인들의 고생이 심하다. 나이 들어서 아파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며 내가 열심히 배워서 아픈 어르신들을 조금 더 편하게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올해 18학번 늦깎이 신입생이 됐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도 적응이 필요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도 노력이 필요했다. 북한 출신이라고 나를 피하고 거리를 두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탈북한 친구들은 탈북했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숨긴다고 숨겨질 수도 없고, 내가 탈북한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숨겨야 하나 싶어서 당당히 알린다. 물론 아직은 어색한 티가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적응해가는 나를 조금만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나도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더 마음을 열려고 노력한다.
대학 와서 제일 좋은 것은 마음대로 짜는 시간표다. 북에서는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모든 것을 다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음대로 수업을 고르고 시간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대학교 시간표뿐 아니라 자고 싶을 때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무엇보다 꿈꿀 수 있는 자유, 이 자유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꿈을 꿀 수 있어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