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에서 온 송유철(70·가운데)씨가 남측 형 송유진(75), 누나 송유주(76)씨에게 훈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엄마가 있었지만, 보육원에서 자랐다. 엄마를 찾아 만나고 와서는 간첩 혐의를 받았다. 1년여 수감 생활도 했다.
송유진(75) 할아버지의 엄마는 한국전쟁 때 송유진 할아버지와 누나를 포항으로 피신시켰다. 엄마는 나머지 형제들을 개성으로 데려갔다. 송유진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폭격 때 돌아가셨다. 포항에 닿은 두 남매는 보육원에서 꿋꿋하게 버텼다. 대학을 나와 대우자동차와 현대자동차에서 일했다. 1990년대에는 태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사업체를 운영할 정도로 생활이 폈다.
그때 즈음이었다. 1990년대 당시 통일원과 안기부를 통해 평양에 다녀올 수 있었다. 북한 사람을 만나도 된다는 방송을 듣고 공식적으로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한 것이다. 태국 공사관에 접촉해 신고하고 1년이 흘렀다. 엄마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일원에 방북 허락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에 북한에 갔다.
헤어진 지 20년 만에 송유진 할아버지는 엄마를 만났다. 1992년 9월이었다. 예순을 훌쩍 넘긴 엄마를 보고 돌아왔다. 송유진 할아버지는 엄마를 만난 지 1년 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큰아들인 송 할아버지를 만나 소원을 풀었던 걸까, 통일이나 이산가족 상봉 같은 또 다른 희망을 품기에는 엄마의 기력이 쇠했던 걸까.
"나도 어머니 보고 싶은 희망으로 살았죠. 어머님도 그랬을 거고요. 그런데 나를 만나고 나서 살아야 할 의욕을 잃으신 건지 1년 있다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소원이던 어머님을 만나고 나니 삶의 의욕이 줄어들었어요."북에 다녀온 송유진 할아버지는 간첩으로 몰렸다. 북한에서 저녁에 만난 사람 중 한 명이 당시 북한 서열 3위였다는 것. 당시 남측 당국은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간첩으로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1년여를 복역하다 1998년 광복절 때 특사로 풀려났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지금 북한 형제를 만난다고 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할아버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