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전, 노회찬이 야인 시절일 때 박용진과 함께 파리에 들리신 적이 있었다. 우리집에서 함께 식사하시던 날 찍은 사진.
최경호
소시적 발산하던 예술적 욕망을 그는 평생 가꾸고 충족시키며 살았다. 8~9년 전, 야인 시절 그가 파리에 들르신 적이 있었다. 지금은 민주당 의원이 된 박용진과 함께였다. 그때, 우리집에서 식사하며 듣던 클래식 음악의 연원과 배경을 그가 정확히 알고 있어, 모두를 놀래킨 바 있다.
그는 매년 통영 윤이상 음악제에 참석해 새롭게 창작되는 현대음악을 감상했고, 종종 그 악보를 구하여, 직접 연주해 보기도 했다. 허름하지만 고집있게 맛을 지켜가는 맛집들을 구석구석 알고 있어서 주변으로부터 맛집 책을 내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파리에서 식사를 나눌 때, 노회찬은 평양 방문에서 보았던 대동강의 하수도 시설에 대해 20분 정도 얘기를 했다. 그 수준이 마치 그 하수도 시설의 설계자가 직접 설계도면을 놓고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듯했다.
2008년 11월 19일, 프랑스 CGT(프랑스노총) 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 유학생이 문화정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행기가 한 대도 오가지 않는 공항을 수천억씩 들여서 짓고 또 짓는 이 나라가, 예술은 가난 속에서 나온다고 굳건히 믿고, 예술에는 단호히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것이 산업적 가치를 입증하든 하지 않든,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사회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예술이 건강하게 사회에서 싹트게 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 만큼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체계는 없다. 국가는 예술의 내용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할 뿐, 예술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그러면서 이란 영화의 예를 들었다. "호메이니 시절,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면서, 미국 영화 수입급지 조치를 내리고, 대신 이란 영화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결과, 이란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다"라고. 노회찬, 그는 문화의 공공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이해는 외부를 통해 주입된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세상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어디에 가서도 지적 호기심이 반짝반짝 발동하여, 세상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이 사람은, 그 충만한 재기를 제 인생을 충족시키는 데 쓰지 않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서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썼다.
그의 문상을 위해 줄을 선 그 어떤 정치인도 노회찬보다 깨끗하지 않다. 더러움에 너무도 익숙하고, 그들에겐 지켜야 할 사상의 순결도 원칙도 없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