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이희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벌인 일명 '사법농단' 사태는 단순히 상고법원을 무리하게 추진한 수뇌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당한 지시를 적극적으로 이행한 '협조자들'이 있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이들 대부분을 내부 징계 절차에 넘겼다. 곧 검찰 수사 대상에도 오를 전망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며 검찰 수사에 대비 중인 걸로 알려졌다.
세 차례 걸친 사법부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적극적 협조자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행정처 떠난 후에도 아이디어 제안... '일방 지시' 아니었다2015년 2월 26일, 법원행정처를 막 떠난 정다주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현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에게 이메일 한통을 보냈다. 아내 김아무개 판사 아이디를 빌려 여성 법관들의 익명 커뮤니티(이사야)에 올릴 글 초안이었다. 당시 기조실은 이 커뮤니티를 주시하고 있었다. '상고법원' '원세훈 선고' 등 민감한 게시글이 가감없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회원을 가장해 글을 올리는 건 정 판사 아이디어였다. 임 전 차장과 통화에서 이를 제안했고, '알아서 해보라'는 답이 오자 실행에 옮겼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가 저희 게시판 주위를 킁킁거리고 있어요"라며 민감한 글이 언론에 노출될 위험성을 경고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회원들의 반응을 모아 두 차례 더 보고서를 올렸다.
'자발적 보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7월에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낯 뜨거운 문건으로 꼽히는 '현안 관련 말씀자료'와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를 작성했다. 사법부가 박근혜 정권에게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 문건들이다. 두 문건은 비슷한 시기 기조실 심의관들이 협업해 작성 중이던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이라는 보고서에도 인용된다.
시진국 기획제1심의관(현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부장판사)은 이 같은 심의관들의 보고서를 취합해 임 전 차장에게 전달한다. 임 실장은 이를 토대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직접 작성했다.
임 전 차장이 작성한 최종본 성격의 이 보고서는 한층 공격적이다. 1차 보고서는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대통령의 환심을 사겠다'는 정도였다. 이후 기조실 심의관들의 보고서가 취합 되고 임 정 차장의 손을 거친 후에는 '상고법원이 좌절되면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는 '압박 방안'까지 포함됐다. 최종본이 나오기까지 검토 보고서 분량은 1차 7쪽 → 2차 37쪽 → 3차 14쪽으로 변화한다. 기조실 심의관들이 일종의 '집단 지성'을 발휘한 것이다.
거짓 진술, 무단 삭제... 진실 은폐에도 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