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열린 제67주년 여군 창설 기념식에서 표창 수여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 이후 사회 전역으로 미투(#MeToo)운동이 확산되면서 연일 성폭력, 성희롱 고발글로 세상이 시끄럽다. 진즉 이야기 됐어야할 문제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것이 한편 다행이면서도 '왜 이제야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걸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또 미투 운동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듯 여기는 사람들과 미투 운동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미투 운동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다'라는 음모론을 염불처럼 외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내 서글퍼지기도 한다. 여전히 이 폭로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건가.
내가 겪은 군대 내 성희롱내가 여군으로서 처음 조직 내 성희롱 문제를 '신고'한 것은 2015년의 일이었다. 2015년에 근무하고 있던 부서는 규모에 비해 여군의 수가 제법 되는 편이었고, 중간관리자도 여군 선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찮게 음담패설과 성적인 농담이 부서원들 사이에서 오갔다. 남군 부서원들이 여군부서원들에게 하는 몸매 품평도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남군들끼리 따로 '단톡방'을 개설해서 야동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중간관리자였던 여군 선배도 이 문화에 함께 동참했다. 그렇지만 이것만 제외한다면 부서의 분위기는 대단히 화목하고 결속력이 있었다. 나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찮은 부서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군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북한도, 철조망도, 경계 작전도, 당직도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음담패설 정도는 눈 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자위하고 지냈던 것 같다.
가벼운 농담은 절대 가볍지 않다. 대놓고 상대를 놀리는 것, 그것도 성적으로 놀리는 것은 사실 농담의 대상이 '권리를 침해해도 괜찮을 정도로 쉬운 상대'가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특히 군대와 같이 계급에 따른 위계가 이미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공간에서 남군 하급 간부가 여군 상급 간부에게 그런 농담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계급 위계가 무너지고 성별에 의한 위계가 다시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나는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괜찮아. 그 정도는 뭐'라고 말했을지 몰라도, 하급자인 상대 남군은 정말로 '나를 우습게 알아도 괜찮아'라고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신고를 하기 전에 중간관리자였던 여군 선배에게 먼저 SOS를 보냈다. 하지만 여군 선배는 참 당황스럽게도 "우리 다 같이 동참했잖아, 이제 와서 불편하다고 말하면 어떡해?"라고 반문하며 나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부서장에게 신고를 하자, 부서장은 나와 면담한 직후 바로 나를 포함한 부서원 전체를 모아 부서 내의 성 군기(軍氣) 문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조심하라고 일침을 두고 갔다.
이미 전 날 부서의 음란한 '단톡방'에 대해 부서 내에서 문제제기를 한 뒤였고, 그날 오전 자리를 비운 내가 부서장과 면담한 것은 충분히 추론이 가능한 일이었기에 졸지에 나는 부서의 분위기를 한 순간에 망쳐버린 내부고발자 신세가 되었다. 신고도 먹히지 않으니 이제 더 이상 부서원들은 나의 기분은 물론 부서 내 서열 3위인 내 계급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대구 출신인 나에게 여군 부서원이 대구의 관광코스를 묻자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부서원이 나에게 들으라는 듯 "맛집은 무슨 맛집이냐, 자갈마당에 가서 조개나 구워먹어라.1)"라고 비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도망치듯 짐을 싸 전출을 가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전출 전 날 페이스북에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함께하지 말자'와 같은 글을 쓰는 게 다였다.
피해자가 마주하는 군대 내 성벽법으로써 규정할 수 있는 성폭력에 미치지 못하는 행위는 누구에 의해서 '장난'이 되고 '친근함의 표시'가 되고 '농담'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아주 쉽게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성폭력에 해당될 수 있다 말을 하지만, 그 선은 어떻게 그어질 수 있는가? 결국 이 선을 정해서 행동하는 것은 오롯이 가해자의 판단이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지 몰랐다. 나는 모르고 한 행동이다", "술김에 친근함을 표시한다는 것이 그랬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선을 멋대로 규정하고 넘나들 수 있는 권력과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남군들에게 그런 권력과 권위를 가져다 준 것은 단순히 계급으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는 불과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대의 가슴이나 엉덩이 등을 직접적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외의 접촉은 '다 똑같은 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우애의 표현 방식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그 문화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성벽과 같은 것이었고, 성벽 안에서 조직의 룰에 수긍하고 감내해야하는 쪽은 항상 당하는 쪽이다.
성벽이 오랜 기간 공고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만이 가지는 특수한 조건들 때문이다. 군 내부에서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피해자가 신고를 한다. 하지만 늘 문제가 곪다 못해서 밖으로 터져 나오고, 급기야 자살에 이르는 케이스가 발생하는 것은 결국 신고를 해도 군 내부에서 처리 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상급 지휘관의 지휘를 여군 고충상담관이 상담을 받고, 지휘 아래에 놓여있는 헌병이 나와서 조사를 하고, 일이 잘 되어 재판을 간다 한들 군 검사부터 판사 심지어 국선변호인까지 모조리 군인이다. 다시 2심을 가도 여전히 국방부의 테두리 내에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그 기간 내내 피해자는 여전히 '군대' 에서 근무를 해야만 한다. 피해사실이 어떻든, 직업적 커리어를 쌓는 건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급도 해야 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장기복무자에 선발도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폐쇄적이면 폐쇄적일수록 도는 소문의 속도와 내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라, 결국 사건이 모두 잘 풀려 좋은 결말을 맞았다 하더라도 피해자와 피해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군 생활 내내 따라다닌다. 살아남은 피해자도 전우지만, 넓은 의미에서 신고를 당해 처벌을 받고 사라진 가해자도 전우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의 군대 내 피해자들은 일단 침묵을 선택한다. 그리고 침묵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는 상대를 미워하기보다 자신을 미워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싫은 티를 냈더라면, 내가 그렇게 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회식 자리에 무턱대고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술을 덜 마셨더라면. 그 기나긴 침묵을 느끼면서 일부 피해자는 자기가 참고 견딘 것이 종국에는 나 자신을 보호하고 조직을 보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피해자들을 탓하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