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헌법에 성소수자의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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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법을 찾아볼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헌법은 아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건 생활에서 마주한 문제 때문이건 내가 찾게 되는 법은 민법이나 형법 혹은 각종 특별법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는 헌법을 만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유가 생겼다. 6월 지방선거와 함께 헌법 개정 또한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에 비해선 큰 화제가 되지 못했기에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개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도 들을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몇 년 동안, 강의실에서 내가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헌법이 과연 어떻게 바뀔지. 그러려면 지금의 헌법은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법전을 펼친 나의 감정은 이전보다 더 좋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부분을 읽으며 그랬다. 성소수자로서 분노했던 사건들이 계속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령 헌법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성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한 충남인권조례가 폐지 위기를 받을 때는 이 원칙이 무슨 힘을 발휘했나 싶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고정으로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은하선씨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대로 누린 게 맞을까. 혼인을 다룬 조항에 이르러서는 헛웃음이 났다. 혼인이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된다고 규정하면 동성 부부들은 어쩌란 의미일까. 불평등한 혼인 관계를 맺어도 괜찮다는 뜻일까?
그곳에는 없었던 성소수자의 자리
말하자면 헌법에 '여자', '노인', '신체장애자', '청소년',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한 번이라도 등장하지만(물론 이마저도 표현과 내용, 빈도에 있어 매우 부족한 면이 많으며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성소수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은 정치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할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 대상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헌법 개정은 1987년에 이루어졌다. 그때의 한국은 지금처럼 성소수자 운동이 활발한 공간이 아니었다. 개헌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지하기는커녕 자기가 무엇을 빠트렸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어느 시기보다 가시화 되어 있으며, 또한 이들에 대한 조직적인 혐오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사람과 달리 법은 나이를 먹으며 알아서 변하지 않는다. 이는 오랜 시간을 손을 타지 않고 지나온 법은 그만큼 낡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성소수자인 나에게 헌법의 이러한 성격은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내게 이번 개헌은 헌법이 지금 한국 사회와 긴밀하게 호흡하는 규범이 될지 아니면 그대로 낙후된 상태로 남게 될지 결정될 시험대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는 변화한 헌법이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존재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었으며, 사회적인 문제를 겪고 있음이 알려진 존재들을 포용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정된 헌법은 반드시 성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제는 헌법이 성소수자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